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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물에서 색을 추출하여 그림을 그리다 보면 제멋대로 변하고 사라지는 자연 잉크의 특성을 내가 원하는 방향대로 끌고 가기란 쉽지 않다. 그리고 색이라는 것이 화방에서 파는 알루미늄 튜브에 담긴 퍼머넌트 레드나 프러시안 블루처럼 결코 손으로 움켜쥘 수 없는 것이며, 소유할 수 없는 것임을 깨닫게 된다. 그러나 형상도 무게도 없는 이것에 나는 매 순간 매혹당하고 속아 넘어가면서도, 이를 저장하고 소유하고자 하는 미련한 마음을 버릴 수가 없다.


우리는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이름 없는 색을 상자에 넣고 싶어 하는 사람처럼, 손가락 사이로 새어 나가는 그 무엇을 이해하고 곁에 두기 위해 긴 시간 배우고, 고민하고, 실천하고, 질문했다. 그리고 몇 해 전 비슷한 마음으로 모였던 이곳에서 43명의 학생은 그동안 그들이 치열하게 좇고 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를 담담한 어조로 보여준다. 그것은 졸업 작품이라는 굳은 단어로 묶어 내기엔 여전히 길들여지거나 통제될 수 없는 생생한 것이며 종료된 것이 아니기에, 나는 그 앞에서 자연스레 그들의 미래를 상상한다.


그동안 이곳에서 학생들을 만나며 그들이 가장 반짝이던 순간들을 떠올려 본다. 그 반짝임은 화려한 제스처에서 오는 것이나 세련되고 정교하게 다듬어진 것이 아니었다. 무언가에 빠져있을 때 나오는 특유의 신나는 말투와 표정, 정체모를 확신에서 오는 에너지가 주변 사람들을 매료시켰던 것 같다. 바라건대, 앞으로도 이런 순간들이 많이 찾아오기를, 그리고 이를 알아보는 운 좋은 사람들과 그 순간들을 함께할 수 있기를.



2023년 10월 마지막 날,



구지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