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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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na0j



환영

 나는 인간이 작은 동물을 키우는 현상에 관심이 있다. 작은 공간 속으로 그들을 데려와 기를 때, 우리 는 그들의 신이 된다. 나는 신이 아니기에 이러한 불평등한 위계는 나를 불안하게 한다. 나의 실수와 나태는 그들의 죽음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 나를 무섭게 만든다. 내가 만드는 작은 동물들은 도시 사람들이 집에서 기르는 애완 소동물의 복제이다. 물을 뿜고 거품을 만드는 등 껍데기 몸체에 생명을 불어넣는 기계들은, 인간이 그들을 위해 만든 세상을 유지시키는 데 사용하는 <연명장치>들이다. 그리고 그것은 인간에게, 살아있는 생물을 돌보는 고됨에서 해방될 가 능성을 제시한다. 자신의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좁은 곳에 생명을 들이는, 이러한 욕구의 실현과 어떠 한 사실들에 대한 무지 혹은 지속적인 외면의 행위는 결국 우리 스스로에게도 향한다고 생각한다. 그 것은 인간의 불완전함의 은폐, 그리고 '완벽한 인간상'에 대한 이상화와 숭배로 나타난다. 내가 만든 순백의 신체들은 신화 속 천사와 성령의 이미지를 상기시킨다. 그들은 무력해 보이지만, 귀신과 산신 따위의 투명하고 양감이 없는 초월적 외형을 갖는다. 동시에 과장된 모양새는 양산형 판타지 게임과 애니메이션 캐릭터를 떠올리게 하여 신비감을 덜어낸다. 이들은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인간성이 결여된 비非인간의 환영이다.

 구식 윈도우 홈 화면에 나타나는 초원 또한 불가능한 메마른 환상이다. 그 이미지는 생명이 죽고 나뭇 잎이 떨어지고 앙상한 가지가 드러나는 자연의 불완전함이 제거된 이미지이며, 그러한 자연의 모습을 영원히 감상하고자 하는 욕망이 반영된 디지털 박제이다. 원형의 의미가 없어진 복제를 마주한 순간 실제의 무엇이 어떤지는 더 이상 중요치 않게 된다. 우리는 그로써 원본을 대체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 오히려 부재를 더욱 실감하기도 한다. 기계 애완동물과 하얗게 표백된 군상, 영원히 푸른 초원을 마 주할 때 드는 감정은, 마치 전 애인을 잊지 못한 상태에서 시작한 새로운 연애의 텅 빈 슬픔같다.


식충식물의 달콤한 향기


 나의 작품에서 아름답게 반짝이는 빛으로 사람들을 유혹하는 유리는 관객이 가까이 다 가올 때 까지 투명한 빛 아래 본질을 숨기는 연막으로 기능한다. 그것은 마치 곤충을 유 인하는 식충 식물의 향기와 닮았다. 마찬가지로 내 작품들이 전시된 공간에는 물 떨어 지는 소리와 작은 기계가 만드는 소리가 울려 퍼지며 차분한 분위기의 첫인상을 조성한 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거슬리는 부분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내 작품에서 유리 로 된 부분은 본래 내용물을 보호하고 숨기기 위해 불투명해야 하는 부분이지만. 유리 는 개체 내부의 장기 또는 작동 원리를 그대로 노출시킨다. 투명한 유리의 성질로써 연 약하고 보호받지 못하는 불안과 무력함을 구현하려 노력하였다.

 나는 마주하기 슬프고 두려운 것을 만들고는 사랑스러운 베일 속에 숨기는 연습을 하고 있다. 전하고 싶은 말은 어둡기에, 관객이 작품을 깊이 들여다보기 전에 그들을 유인하 고, 평온함을 제공하여 잡아두기 위함이다. 찬란하게 반짝이는 빛에 사람들은 꽃에 이 끌린 벌처럼 다가온다. 하지만 이끌려 온 것을 바라보다 보면 껍질은 서서히 무너지고, 관객은 그 이면을 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