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역사를 통틀어 전쟁으로 인한 사망자는 6억 1900만 명이다.
우리는 사흘마다 그만큼의 동물을 죽인다.
-다큐멘터리 영화 <Dominion (Chris Delforce, 2018)>
오래 전부터 비인간동물들이 좋았다.
움직이는 모양부터 살아가는 방식까지 너무도 아름답고 신비로운 그들을 영원히 바라봐도 좋을 것만 같았고, 만들고 그리며 그 사랑을 표현해왔다. 비인간동물들의 숨이 너무나도 쉽게 꺼져가는 지금의 시간 속에서 ‘그 사랑’은 너무나 안일한 것이었음을 깨달은 순간부터, 그 마음은 부지런히 헤매며 나아갈 바를 찾고 있다. 나의 모든 작업은 그 헤맴의 흔적들이다.
지금을 살아가는 수많은 비인간동물들은 자연의 고리 대신 대량 생산과 도살의 고리 안에서 호흡하지 않는 사물처럼 다루어진다. 사육틀, 철창, 케이지 속의 그들을 만들고 그리는 것은 참혹한 장면들 속에서 읽은 표정들과 몸짓을 대하는 마주하기 방식, 어쩌면 ‘마주하기 버거운 그 잔상들을 견뎌내는’ 방식이다. 또한 생에서 죽음까지 너무 짧은 시간 동안 존재했던 그들을 붙잡아두려는 시도이기도 하다. 작업안에서 이어지는 나의 호흡을 통해서 다른 존재의 호흡을 떠올리고, 그때마다 내가 거대한 고리 안에서 숨쉬고 있는 아주 작은 존재임을 절실히 느낀다. 그리고 그것은 다시 마주하기를 시도할 수 있는 용기로 이어진다. 나의 작업 안에서 반복해서 등장하는 비인간동물들의 형상은 분명 일어나고 있지만가려진 폭력의 장면들, 의도적으로 숨겨진 착취의 장면들을 끄집어내는 역할을 수행함과 동시에, 비인간동물들의 재현이 지녀 온, ‘(다른 생김새를 가진) 소유하고 싶은 매력적 대상의 이미지’로서의 효과를-의도치 않게- 드러내며 끊임없이 충돌을 일으킨다. 그 충돌을 적극적으로 타고 올라 그 너머의 것들을 계속해서 가져오고자 한다.
즉각적인 반응으로서의 드로잉과 조각이 작업의 주를 이룬다. 수행적인 태도로 손을 움직여 존재들을 불러오고, 그로부터 숨이 생겨나는 과정을 경험한다. 더 나아가 애니메이션을 통해 되살리기를 시도하는데,한때 숨을 지녔었지만 무참히 사그라지고 잊힌 존재들을 다시 불러낸다. 한 프레임 한 프레임을 그려서이어 붙여 다시 숨쉬게 만드는 것은 각각의 생을 세려는 노력이며, 이는 곧 애도의 행위로 이어진다. 물질과의 접촉 또한 멈추지 않는다. 숨을 간직한 철과 흙으로 상징들을 만들며 물질들이 지닌 치유의 힘, 응축된 에너지를 옮겨오려 한다.
지나간 시간 속, 또 나와 멀리 떨어진 곳의 시간 속 존재들을 불러와 연결짓기를 시도한다. 그것은 지금, 여기에 있는 존재들의 이미지와 뒤섞이며 이야기를 확장시킨다. 비인간동물들로 대표되는 나의 작업은 결국 모든 살아 숨쉬는 것들로 통하는 이야기이다. 나를 이 거대한 이야기에 끌어들였던 에너지는 살아 숨쉬는 생명들로부터 나오는 것이었고, 그렇기에 닫힌 이야기가 아니라 끊임없이 확장될 이야기이다. 그 안에서 내가 붙들고 내세우는 것은 작은 생명의 심장 박동처럼 작지만 힘있는 것들, 잊어서는 안 되는 찰나의 감각들이다. 폭력의 상흔들을 이야기함과 동시에 그러한 찰나의 감각, 그처럼 빛나는 순간들을 한 자리에 제시한다. 이 모든 바람들이 모여 노랫소리처럼 퍼져 모든 것을 연결지어 주기를, 그리하여 처음 이 세계가 만들어졌을 때의 모양을 되찾을 수 있기를 바라며 작업을 이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