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일상 속에서 갑작스럽게 무언가 어긋나는 작은 순간들에서 현실과 맞닿아 있음을 발견한다. 외부세계와 나의 관계가 명확하게 이름붙일 수 없는 모호한 관계에 접어들며 긴장감이 고조되는 순간들을 관찰했고, 금세 휘발되는 당혹감을 복기하는 수단으로써 각각 하나의 장면으로 구성했다.
그려지는 대상은 되도록 전부 안정적인 주인공의 위치에서 밀려나 프레임 밖으로 잘리거나, 무언가에 가려져 일부가 보이지 않도록 했다. 공기의 떨림이 느껴질 정도로 곤두선 촉각, 괜히 엉뚱한 무늬에 사로잡힌 시선, 상황을 매끄럽게 무마하려고 시도하지만 실패하는 제스처를 화면을 채우고 붓질하는 방식에도 적용했다.
<미세한 마주침micro encounter>의 encounter는 디지털 게임의 ‘enemy encounter’에서 따온 것으로, 갑작스레 코앞에 닥치며 때로는 도망치고 싶은 적대적인 마주침을 유희적인 관점으로 재구성하고자 했다. 이름 붙일 수 없는 방을 그린 <저쪽 방>에서 시작해서, <쥐구멍이 없는 주차장>, 레진 가게 아저씨의 갑작스런 신체접촉을 그린 <레진가게>, 어색한 시선의 교차를 그린 <브이>, 본 메뉴가 나오기 전 식당 테이블의 적막을 그린 <접기>는 모두 미세한 마주침의 순간들을 유희적으로 소화한 결과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