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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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enades>

Maenades: 고대 바쿠스를 섬기는 신도를 일컫는 말
미친 여자-어머니가 둘인 자-광기를 불어넣는 자-안드로진노-영혼의 사냥꾼-생식력이 없는 남자-살인자-로 불리기도 한다.



정신질환과 이상심리학에 대한 의학적 서술에서 나를 본다.
나와 친밀한 사람들을 본다. 여성과 퀴어를 본다.
그 건조한 글이 삶이 무너져내릴만큼 강렬한 감정을 일으킨다. 질병이라고 하기엔 고귀하고,
단시 사랑이나 애증이라는 정동이라기엔 어려운 이 감정을 더 세심하게 들여다 보고 싶어진다.

경계성 인격장애, 연극성 인격장애, 의존성 인격장애 등,
특히 여성에게 많은 것으로 알려진 이 병리는 주로 관계에 관한 것들이다. 불안정하고 자기파괴적인 관계를 반복하는 인격장애의 의학적 사례, 여성이자 퀴어로서의 삶, 그와 관련된 이미지들이 무한히 겹쳐진다. 파우더 핑크, 새틴리본, 투명한 오간자 천과 함께 유령, 폭력, 죽은 몸, 이명 따위. 사랑의 도피대신 동반자살을 선택한 소녀들과 결코 닿지 않을 사랑노래를 부르다 투신하는 세이렌. 이 모호한 물질들, 밀려난 존재들을 나는 역사에서도 예술에서도, 그리고 나 개인의 삶에서도 본다. 

주체는 비주체를 외부에 두어야 성립하는 것은 아닐까. 외부로 밀려난 존재들, 주체되기를 거부해야만 하는 존재들, ‘바깥’에서 가능성을 찾고, 비체되기를 자처하는 존재들이 서로를 바라보고 겹쳐진다. 나는 그것이 죽음을 향한 것일지라도 어떤 절정의 기쁨과 쾌락을 동반한다는 것, 그리고 그 순간, 잠시 아름답다는 것을 안다.

유령으로만 존재하는 것, 순간 흩어지고 사라지는 이 복잡하고 미심쩍은 감정과 관계들에 나는 아직 이름을 붙이지 못했다. 이 장소에 모아둔 내 그림들은 그 명명할 수 없는 것들을 어떻게든 움켜쥐어 보고자 노력한 결과물들이다. 설령 그것이 의학이나 제도의 내부에서 명명되고, 병리화되고, 정식화되고 있다고 한들, 나의 자의적 발견과 느낌, 표현을 길어올리는 미술적 행위까지 쉬이 포섭해낼 수 있지는 않을것이다.

나는 이 불가능성에서 예술의 희망을 또한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