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원 jei.one96@gmail.com

벌레와 형의 죽음2

나는 적을 죽이고 적진을 부수는 게임을 한다. 게임에서 죽음은 유희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1. 내 캐릭터 머리 위에 떠있는 검정 막대기는 생각보다 빠르게 부서진다. ‘죽음’과 가까워지는 시간은 1초. 1초 만에 죽음으로 증발하는 존재를 알아차리기엔 게임 속 유저들이 너무 바쁘다. 화려하고 강렬한 게임 이펙트가 죽음을 알린다한들 눈에 남는 건 희열 또는 굴욕뿐이다. 오히려 게임 이펙트가 지나치게 강렬해 적이 죽는지 아군이 죽는지 분간하기 어렵다. 전쟁의 전리품처럼 사람들은 자신이 죽인 적의 숫자를 세며 서로를 과시하고 비하한다. 따라서 나는 게임 속 죽음의 현장들을 포착한 후 빠른 호흡 속 멈춘 순간처럼 제시해본다. 가벼운 죽음이 단순한 유희의 개념을 넘어 혐오로 종결되기에, 무거운 물질적 언어로서 화면에 휘발성을 박제해놓는다.
2. 숲 속에서 조깅을 하듯 걸어가는 캐릭터가 보인다. 순간 덤불 속에 숨어있던 적팀 다섯 명이 그를 덮친다. 찰나의 섬광이 지나간 자리엔 어정쩡한 모습으로 죽어있는 캐릭터가 남는다. 바위에 머리를 처박고 죽어있거나 자신의 무기에 깔린 채 눈을 뜨고 죽어있다. 도망가는 적 혹은 도와주러 온 동료가 그 위를 지나간다. … 이는 세계 대회를 위해 특별 제작된 인카메라로 게임 속 장면을 구현한 것이다. 유저들은 원래 캐릭터를 위에서 내려다보는 시점(1에 해당)으로 플레이하지만 게임 회사가 죽음의 장면을 더 극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다양한 시점의 인카메라를 사용하는 것이다. 이는 죽는 장면을 영화적으로 찍어놓은 ‘죽음 모음집’으로 볼 수 있으며, 게임이 죽음을 어떻게 소비하는지 선명하게 드러낸다. 그런데, 죽음만을 제시하는 장면에서 게임과 상관없는 그 이상의 이야기가 읽힌다. 극적인 효과가 하나의 극을 만들어버린 것이다. 그래서 나는 게임이 원했던 의도를 뒤집는다. 죽음 이전, 죽음, 죽음 이후 상황의 아이러닉한 이미지를 재배치함으로서 극의 방향을 우회시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