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다영 dieyoungli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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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rfect Memes: From the Digital World

                인터넷은 우리가 접할 수 있는 수많은 시각 환경 중 하나이다. 화면 밖 - ‘현실’에서 보는 것을 풍경이라고 한다면 이 시각 환경에서 다가오는 이미지들은 디지털 풍경이라 부를 수 있다.  웹 환경에서 자주 접할 수 있는 것 중, 밈(meme)이란 단어의 기원은 영어로 gene에 해당하는 그리스어 mimema(“흉내내어진 것”)으로부터 왔다. 오늘날 밈은 한국어로 ‘짤방(짤)’과도 동일시될 수 있으며, 사람들이 인터넷 혹은 소셜 네트워크를 통해 주고받는 수없이 복제된 데이터이다. 밈은 이미지에만 국한되지 않으며 동영상과 음악을 포함하기도 하고, 더 나아가서는 하나의 문화이기도 하다. 웹 사용자들은 다양한 밈을 통해 자신의 기분, 혹은 말해야 할 것을 대신하길  바란다. 동물 이미지는 대표적으로 많이 쓰이는 밈의 소재 중 하나인데, 어그러지고 깨진 귀여운 존재들의 모습을 통해 삶의 모습을 괴팍하게 표현하곤 한다. 이처럼 화면 내에서 볼 수 있는 이상한 풍경들은 진지하면서도 약간의 틈이 존재하고, 거기서 오는 허술함으로부터 기묘함을 느낄 수 있다.                
                 이렇듯 주로 웹상에서 비롯된 이미지들은  저화질로서 묘한 심상을 풍긴다. 최근에는 이들 가운데 ‘어딘가 웃긴’ 것들을 선별해 주로 유화로 그려나가는 작업 방식을 택하고 있다. 어딘가 웃긴 감상에는 여러 이유가 존재한다. 이는 이미지의 종류에 따라 다르기도 하고, 지극히 주관적인 감상에 따르기도 한다. 예를 들자면, <K-저씨>에서는 전체적인 구도와 풍경에서 느껴지는 K-스러움(이를테면, 주말의 광화문에서 볼 법한 풍경)이 주는 감상이 선택된 이유의 중심에 있었고, <“Husband”>에서는 “남편 - 심상정”이라는 문구에서 오는 의도치 않은 전복이 느껴지는 묘한 모습이 유머러스하게 다가왔다. 한편 구체적인 인물들이 등장하지 않는 <bird-dog>은 열화된 이미지의 불분명함이  풍기는 uncanny 함 때문에 선택하였다. 언어로 온전히 형용할 수 없는 어떠한 이상함 속은 파헤쳐보면 여러 갈래로 나뉘어 존재하기도 한다. 다양한 가능성 가운데 묘하고 웃긴 지점에 집중해 이것들을 풀어나가고 싶은 욕구에 사로잡힌다.
                 인터넷에서 배포된 이미지들의 이상함은 그 생성 과정에서 빠르게 확산되는 특징에 의해 존재한다. 이러한 이상함이 나에게 완벽하다고 느껴지는 데에는 무한으로 복제되고 변주되는 과정에서만 발생할 수 있는, 원본 없는 이미지로서 그 자체로 현실을 대체하는 시뮬라크르적 특성 때문이다. 원본 없는 이미지는 그 자체로 현실을 대체하고, 현실은 이 이미지에 의해 지배받게 되므로 현실보다 더 현실적인 것이 된다.[1]이렇듯 디지털 풍경은 현실에서 유리되어 독자적인 감상을 자아낸다.
                 “가난한 이미지는 역동적인 복제품이다...... 이 이미지의 유령, 미리보기, 섬네일, 엇나간 생각, 떠도는 이미지는 무료로 배포되며, 저속 인터넷으로 겨우 전송되고, 압축되고, 재가공되고, 갈취되고, 리믹스되고, 급기야 다른 유통 경로로 복사되어 붙여넣기 된다...... 가난한 이미지는 업로드되고, 다운로드되고, 공유되고, 재편성되고, 재편집된다. 그곳에서 화질은 접근성으로, 전시 가치는 제의 가치로, 영화는 동영상으로, 성찰은 기분 전환으로 대체된다.”[2]나에게 이상하면서 그렇기에 완벽한 가난한 이미지들을 하나의 컬렉션으로 만들어 페인팅의 형식으로 전시하는 것은 그들을 마치 소유할 수 있는 존재인 것 처럼 만드는 행위처럼 느껴진다 . 
                 유화/페인팅이라는 매체는 보통 나무로 짠 틀로 이루어진 캔버스와 물감의 조합이라는 전통적인 공식을 고수한다. 이를 통해 만들어진 회화 표면은 매우 견고하며, 이런 방법론을 거스를 시에는 반드시 전통을 벗어나는 데에 합당한 이유가 필요해 보인다. 작업시에는 이런 회화의 오랜 공식을 굳이 거스르려 하지 않는데, 캔버스 표면 위에 올라가는 것은 (물리적으로) 풍화될지언정 흐려질 것 같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페인팅은 유약한 이미지들을 완전하게 보여 주기에 알맞은 매체가 아닐까. 완벽한 짤을 주워서 캔버스 표면에 옮기는 것은 이들을 간직하는(“collect”) 것에서  나아가 끌어 내어 내보이고 싶은 욕망의 일환이다. 나에게 완벽한 짤에 내포된 상황들은 지나가고 있는 타임라인을 붙잡아 고정시켜둔 스냅샷과 같다. 오로지 픽셀로 존재하여 스크린 너머로 만져지지 않는 완벽한 이들을 회화라는 형식 속 화폭으로 옮김으로써 물리적으로 현존하는 존재로 불러낸다. 이렇게 그려 가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표현적인 방식을 적극적으로 사용하여, 이를 통해 계속해서 디지털-풍화[3]되어 가는 환경에서의 이미지들의 헛헛한 유머와 기괴한 디지털 풍경만의 인상을 나타내고자 한다. 



[1] Jean Baudrillard, “Simulacra and Simulation”, 1983
[2] Hito Steyerl, “In Defense of the Poor Image”, 2009 e-flux Journal, 번역 김실비
[3] 디지털 매체로 저장된 사진 등이 시간이 지날수록 화질이 떨어지고 ‘풍화’된다는 일종의 meme을 설명하는 말. 실제로 풍화된다는 근거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