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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타쿠, 관종 그리고 히키코모리
원초적 물질, 그러니까 원소나 광물들의 무한한 시간성, 자연 그 자체임에도 차갑게 느껴지게 하는 생명력의 부재, 그 원시적이고 내추럴한 물질들은 초-자연적인 존재로 느껴질 만큼 놀랍고 매력적이 다. 과학적 사실이 밝혀지기 전까지는 많은 원초적 물질들이 실제로 초자연적인 존재로 여겨지며 수많은 미신과 전설, 종교적 집착, 권력과 재산에 관여했다. 가령 소금은 액운을 막아주거나 귀신을 쫓아 내는데에쓰기도하고, 음식이나사체를썩지않게도하며,물에닿으면금새사라지는허무성을안고서화폐로채택되어소금한줌은여자아이한명의가격도되었다.오팔은,무지개색홀로그램의 가장 오래된 시초 쯤 된다고 생각했다. 안쓰러울 정도로 유약하고 변질이 쉬워 가련한 이 광물 역시 힘을 상징했다가, 다시 불행을 상징했다가, 근대에 보석으로 사용되면서 10월의 탄생석이 된다.
이러한 과정을 거친 작업물들에서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것은 시간성이었다. 오래도록 기억하는 것과 기억에서 사라지는 것, 낡음과 늙음, 그것을 차마 인정하지 못해 영구 보존하려는 노력들로 이뤄낸 기술들이 그랬고, 영원히 사라지지도, 변하지도 않을 것들에 대한 동경이 그러했다. Recollections of Forgotten Things 시리즈들은, 잊혀질 뻔 했던 기억의 작은 조각들을 다시 불러 내는 의식이다. 낡고, 변형되고, 일부는 상실되거나 과장된 채로 무의식을 부유하며 떠돌아다니는 것들을 조심스럽게 주워 모으는 과정을 거쳐 최종적으로는 부피를 가진 시각적 물체로 소환한다. 인체 절반 이상이 H2O에 탄소를 곁들인 구조물임을 상기하면, 기억이나 시간 조각 따위를 위한 육체를 현실화 시키는 데에 적당히 어울리는 물질을 찾기 충분했다. 언젠가는 사라진다는 사실, 유한성이 있기에 아이러니하게도 그것이 비 로소 아름답게 빛난다. 죽음이 생명을 가치있는 것으로 만들어 주듯이.
후각 기억력은 인체의 감각 중 기억을 가장 오랫동안, 선명하게 보존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직까지 냄새를 기록,저장 및 전송하는 기술이 없다는 게 새삼 놀라울 따름이다. 우연히 스친 어떤 향기 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트라우마를 갑작스럽게 꺼내 눈앞에 들이밀기도 한다. 후각에 입력되어 있다가 갓 꺼낸 싱싱한 오랜 기억은 단지 기억하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마치 그 사건 그 시간에 다시 놓여 져 있다는 착각마저 불러일으키는 경험을 선사한다.
퍼포먼스 [극]에서, 눈을 가린 상태로 무대에서의 방향과 위치를 알 필요가 있었다. 바닥 요철을 발바닥으로 보다 예민하게 느끼기 위해 베이비파우더를 뿌렸는데, 그 때문에 공간 전체에 베이비파우더 향이 가득했고, 자연스럽게 그 향기는 작업의 일부로 녹아들었다. 베이비파우더의 원료인 탈크의 유해성 논란으로 지금은 거의 사용되지 않지만, 파우더를 팡팡 두드리던 세대의 아기들이었다면 어떨까. 이미 생산이 중단된 베이비파우더와 그 향이 상징하는 바는, 사라져감에 비례하며 더 명확해지는 것 같다.
물 한 바가지에 빨간 색소 한 방울을 떨어뜨리는 상상을 해보자. 물이 새빨갛게 물드는 데 2-3초면 충분하겠다. Fluid Object 1~3 에서 Currunts 1,2로 이어진 작업에서는 투명한 액체 속의 이물질 -색 소나 가루 등-이 퍼져나가는 시간이 극단적으로 늘어지는 현상을 시각적으로 재현하고자 했다. 물에 몇가지 조작을 가하면 완전한 액체도, 고체도 아닌 애매한 중간지점의 끈적한 것을 만들 수 있었고, 액 체-고체의 사이에서 묽고 단단한 정도를 조절했다. Currents 1의 경우, 80mm x 80mm x 80mm의 작은 정육면체 내에서 투명한 액체 위에 색소를 떨어뜨려 그것이 완전히 퍼질 때까지 무려 한 달이나 걸렸기 때문에, 관객은 그 유동성을 육안으로 확인할 수 없었다. 또 한번 물든 색은 되돌릴 수 없기에 일회성 설치물로 끝났던 반면에, Currents 2 에서는 모래나 광물 가루를 사용하여 살짝 흔들어 주면 그것이 액체 안에서 부유하는 모습을 반복해서 볼 수 있었는데, 그 중에서도 특히 오팔의 이리저리 변화하는 색감과 반짝임은 효과적으로 아름다웠다.
70년대 독일에서 최초의 전자악기 그룹 Kraftwerk가 등장한다. Kraftwerk는 '발전소'라는 뜻으로, 공장의 반복적인 기계음, 로봇처럼 감정이 없는 상태 등을 내세운 음악들을 테크노라 했다. 그들의 초기 대표곡 이‘Techno Pop’인 것처럼 테크노는 현대 전자 악기와 디지털 음악의 시작이었다.
‘똑같은 박자에 높낮이 없는 음들이 무한반복하는 음악에서 사람이 쾌락을 느끼는 것은 피스톤 운동과 닮았다. 어떤 테크노적 음악은 성적 흥분을 일으키는 신경을 직접적으로 건드린다.’
직접적 감정표현을 삼가고 사운드 그 자체에 집중하는 차가운 성격을 띄고 있어, 미술사조 중에서는 미니멀리즘이나 모노하와 닮기도 했고, 마크 로스코, 잭슨 폴록에 비유해 볼 수도 있겠다. 때문에 테크노는 현재도 사운드 아트, 최첨단 사운드 기술력과 밀접해 보인다. 형태의 유동성이 매우 커서 끊임없이 새로워지며 경계를 헐고 팽창하고 있어, 이미 테크노라는 명칭 자체가 무의미하다고 느낀다. 이것은 음악장르를 넘어서 개념과 공감대로 확장되고 있다. 누군가 나의 설치 작업에 대해 ‘이거 테크노 같다'고 말했던 것은 나를 정확히 관통하는 이해였다. 사카모토 류이치는 일본을 대표하는 영화음악 작곡가이기도 하지만, 잘 알 려지지 않은 실험적인 앨범도 꾸준히 보여주고 있었고 나는 그게 테크노적이라고 확신했다. 최근 그가 보여준 미술전시와 사운드 아트의 융합은 내가 생각하는 확장된 의미의 테크노의 형태였다.
안타깝지만, 결국 나는 -좋은 미술작가가 되기 위한 소양으로 알려진- 철학적 사유, 인문학적 글쓰기 그리고 어려운 글 읽기 능력을 획득하지 못한 채 배출되는 학생이 되었다. 그것들은 결국 단 한 번도 나의 관 심을 끌지 못했고 -수많은 시도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는 내게 미술적으로 작동하는 글을 서술하는 능력이 없음을 -그러나 형식적으로 흉내 정도 낼 줄 아는 것을- 뜻한다. 이런 경우 대부분 작업에 관한 글을 쓰는 것보다 쓰지 않는 게 더 효과적으로 작용하므로 이 텍스트 공간도 비워 놓는 것이 이론적으로 옳으나, 나는 (또)옳지 않은 선택을 하고자 한다. 왜냐하면, 아마도 이 후 바르고 슬기로운 미술작가로는 성장하지 않을 것이 분명하고, 그것이 어떤 거창한 목표에 해당하지도 않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언가를 간절히 표현하고 싶은 마음에 솔직하게 대응하고자 하는 까닭이다. 표현의 행위에는 상호 소통이 가능한 대상이 반드 시 필요하다고 할 수 있는데, 어떤 형태에 구애받지 않는 관심이 이 중 하나에 해당하고, 동시대적인 표현을 빌리자면 관종이라고 칭해도 무방하겠다. 미술적이지 않아도 된다면 -어쩌면 미술적이지 않으면 않을수 록 더 미술적이라면- 혹은 최대한 미술적이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는 행위에 대한 킹능성을 고려한다면 어떨까. 정해진 일수를 채우고 나면 확실하게 사라질 예정인 이 공간은 새로운 실험적인 연구를 위한 최적의 조건이 되어줄 수 있을 것이다.
이쯤되면 슬슬 눈치챌 만한 사실은 별다른 깊이의 내용 없이 그저 어디서 읽어본 익숙한 형식을 빌려 그럴싸하게 꾸며내고 있을 뿐이라는 것일 것이다. 마감기한을 4시간 째 어기고 있는 새벽 4시의 노트북 앞에서 인생이나 졸업이나 미술 따위를 관통하는 글을 쓸 수 있을 리가 없다. (그러라고 있는 텍스트 공간도 아니다) 킹치만 졸리다. 이쯤 그만하고 자야겠다. 어처구니없지만, 이게 꼭 졸업과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