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래균



잡,코리아
        - 노는 것도 일이다


게임에서 출발한 입체, 영상, 드로잉을 통해 시선 바깥에 있는 존재를 이야기 한다.

-한국
할아버지가 ‘가네사와 시게오’라는 이름으로 학교를 다니던 시절부터 유튜브로 뉴진스를 보는 지금까지, 세 세대가 지나가기도 전에 한국은 빠르게 달려갔다. 잘 살아 보세. 먹고 살기 위해 죽을 듯이 달려가는 한국의 앞길엔 시간을 들여 풀어나가야 할 존재들이 쌓여 있었다. ‘우리’를 막는 이들은 곧 골칫거리가 되어, 보이지 않는 곳으로 치워지거나 그 자리에 묻혔다. 그리고 그 위로 곧고 평탄한 신작로가 뻗어나갔다.

-잡
먹고 살기 위해. ‘먹고사니즘’이 만들어낸 한국에서 모든 이들은 먹고, 살아야 한다. 먹고 사는 것도 일이다. 그런데 정작 먹고, 사는 것은 진정한 ‘일’이라고 부르질 않는다. ‘일’이라고 불리는 것을 하기 위한 수 많은 일들. 먹고, 닦고, 씻고, 빨래하고, 장 보고. 우리는 이걸 잡스러운 일, 잡일이라고 부른다. 한국은 잡일을 하는 존재들이 먹여 살렸다.

-놀이
노는 것도 일이 될 수 있다. 잡일은 아무리 열심히 해도 놀고 먹는다는 말을 듣곤 하니까. 그렇다면 분명 노는 것도 일이다. 일은 놀이가 되고, 놀이는 일이 된다. 그 경계에서 예술과 게임이 만난다.

-게임
게임은 ‘플레이’하는 매체이다. 게임 플레이는 노는 것이면서, 다른 (가상)세계의 참여이자 행동이다. 디지털 세계의 질서는 일상 속 모든 것을 계산 가능한 숫자로 바꾸어 놓는다. 체력과 시간은 측정할 수 있는 수치로 플레이어에게 주어진다. 게임 속 질서에서는 계산할 수 있는 수치만 유효하다. 게임을 만드는 것은 새로운 질서를 만드는 과정이고, 세계가 견고하게 가지고 있는 경계를 재설정하는 과정이 될 수 있다.

-몹(mob)
게임은 모든 과정을 완성하여 감상자에게 전달하는 영상과는 달리, 플레이어가 가지고 있는 기기에서 실시간으로 하기에 제한된 영단어 ‘mob’은 잔뜩 화나있는 군중이나 패거리라는 뜻이다. 일본 서브 컬처에서는 ‘モブ(모브)’라는 단어로, 주인공이 아닌 들러리 인물을 칭할 때 쓰이기도 한다. 그리고 게임에서는 주로 ‘몬스터’의 준말로 플레이어 가 성장하기 위해 처리해야 할 대상이다.

주로 ‘잡몹’이라고 불리는 이들은 어원에 충실하게 패거리로 몰려 다닌다. 몹들은 플레이어의 원활한 게임 플레이를 위해 적은 리소스를 나눠가지며 단순하고 각진 모습으로 등장한다.

-공룡
한 때 땅 위에서 번성하던 공룡은 지구에 떨어진 운석으로 한 종만 남고 모두 멸종했다. 땅 아래 묻혀있던 공룡들은 사라지지 않고 땅이 뒤집히면서 밖으로 올라와, 지금 우리들에게 자신의 존재를 알린다. 땅 아래 공룡들은 연료가 되고 닭이 되어 지금도 우리를 먹여 살리고 있다.



작가는 게임을 통해 한국 사회에서 일과 놀이의 충돌을 탐구하며 노동의 경계에 대해 질문한다. 게임은 작가에게 노동과 놀이가 만나는 곳이다. 작가는 일이면서도 놀이처럼 보이는 예술과 놀이였다가 일이 된 게임을 합쳐 불안정하고 선명하지 않은 곳에 위치한 예술게임을 만든다. 흐릿한 경계에 있는 예술게임은 노동의 경계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작가는 뚜렷하지 않은 경계에 머물며 먹고 살아야 하는 현실을 이야기한다. 한국은 세대가 세 번 지나기도 전에 식민지에서 벗어나 저출생, 고령화 사회에 이를 만큼 압축적인 성장과 기술 발전을 달성했다.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을 묻어놓고 그 위에 새로운 것을 빠르게 올리면서 이루어진 개인화되고 디지털화된 사회는 기묘하고 이상한 지형과 시간성을 띄게 되었다. 이 혼란은 작업 속 시간성의 혼재로 나타난다. 작업에 등장하는 이미지나 노래의 가사로 드러나는 텍스트들은 과거에 이야기인지 아니면 바로 어제 본 것인지 모를 기시감을 느끼게 한다.

작업에 중심으로 등장하는 몹(mob)은 인간의 시야 바깥에 있는 생물들이다. 동물 무리나 공격적인 군중을 뜻하는 몹은 게임이나 서브컬처에서 주인공이 아닌 엑스트라 혹은 NPC(Non-Player Character)를 지칭한다. 이들은 콘텐츠 제작자들의 경제적인 이유로 단순한 형태를 띈다. 작가는 이번 작업에서 쓰레기 섬에서 집을 얻기 위한 소라게 ‘Krap’과 야맹증을 가졌지만 밤에 일해야 하는 닭 ’CHICKEN’에 이어 아주 오래 전 한반도에 살았던 공룡들의 모습을 상상한 ‘잡룡(JobRyoung)’ 또는 ‘일용’의 이야기를 풀어낸다.

공룡은 6600만년 전 지구에 떨어진 운석으로 새를 제외하고 모두 멸종했고, 땅에 묻힌 몇몇 공룡들은 화석이 되었다. 화석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쌓인 땅이 뒤집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곳까지 도달해야 볼 수 있다. 하지만 한반도에서 죽은 공룡들은 산골짜기와 아파트 아래 묻혀 그들이 무엇을 하고 살았는지 알 수 없다. 작가는 알 수 없는 것을 상상하여 이야기를 만든다. 이야기 속 잡룡들은 우리와 비슷한 일상을 살고 있다. 자신들을 잡룡이라고 이름 붙였지만 서로를 일용이라고 부르는 이들은 다가오는 멸망을 알지 못한 채 뭘 해서 먹고 살지 걱정하는 보통의 존재들이다.

JOB 용/치 KIN, 2023, 시멘트 캐스팅, 아이볼트, 49x23x43cm



JOB 용/치 KIN, 2023, 시멘트 캐스팅, 아이볼트, 49x23x43cm



JOB 용/치 KIN, 2023, 시멘트 캐스팅, 아이볼트, 49x23x43cm



봉왕, 2023, 천, 디지털 프린트, 라커, 130x179.3cm



사공의 뱃노래, 2023, 포장지에 먹, 47 x 83.5cm



일용미니잡상 _ 일하는 랩터



일하는 랩터, 2023, 철사, 유토, 10x7x10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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