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식



crazy_little_things 
 시선은 한 사람이 지닌 생각과 욕망을 여과없이 투영한다. 김재식은 무의식적으로 목격한 대상을 화면으로 옮겨 수집하며 시선이 가졌던 의지를 반추한다. 그의 시선은 일상에서 마주칠 수 있는 보통의 대상들에게 향하며, 그들이 가진 가치를 재발견하고자 다시금 화면의 중심으로 불러온다.

 봄이 되면 만개하는 개나리와 철쭉에, 마른 가지에서 돋아난 새싹에 새삼스레 감동한다. 그러다 비가 오면 금세 꽃은 지고 어린잎은 짙어진다. 세상은 내가 이해하기도 전에 먼저 흘러가 버리고, 나는 한 걸음씩 뒤처진 채 세상을 받아들이게 된다. 세상의 흐름보다 느리게 현재의 뒤통수만을 좇는 나는, 이제껏 보아 온 것들이 머지않아 사라져 버림을 깨닫는다. 이러한 깨달음은 불안을, 불안감은 소유욕을 자아낸다. 주위의 모든 것을 소유하고자 하는 욕망은 곧 스스로를 길을 걸으며 마주하는 모든 것이 흥미로워 보이는 ‘잡식성 수집가’로 만든다. 보도블록의 패턴부터 집 앞의 화분까지, 삶 속의 대상들은 어쩌면 유한하고 특수한 상황에서 마주치는 것이기에 그 존재 자체로 특별한 것일지 모르겠다. 길을 걷다보면 의외의 발견을 통해 고민이 해소될 때가 있다. 그래서 생각을 정리해야 할 때마다 동네를 한 바퀴 걸어본다. 타일과 간판을 구경하며 생각의 실마리를 찾는다. 원래 있던 자리에서 벗어나 앞으로 걸어가다 보면 생각도 앞으로 나아간다. 생각의 흐름도 길의 경로를 따라 변주한다. 길은 건물 사이로 먼 풍경을 서서히 보여주다 이윽코 다시 감추어 버린다. 먼 곳까지 다다르면 어느덧 흩어진 장소들을 걸음으로 잇게 되고, 수 없이 나뉘고 갈라지는 길을 통해 세상이 모두 연결되었다는 사실을 체감한다. 산책을 하는 마음은 그림을 그리려는 마음과 유사하다. 마음이 현실에 안착할 곳을 찾지 못할 때 그림을 그리면 내가 생각하고 바라봤던 것들, 머물렀던 장소들이 비로소 연결된다. 가을이면 찾아오는 서늘한 공기를 마주치게 되면 어떻게 할 도리도 없이 그리운 기분에 사로잡힌다. 서늘함이 모든 생각과 감각을 잠식한다. 일 년의 겨우 며칠만 만끽할 수 있는, 달궈진 여름의 피를 식혀주는 가을 바람을 떠올리면 이제껏 잊었던 기억들의 실마리를 움켜쥐게 될 것만 같다.


--서늘함이 가져다준 기억들--
 어렸을 적 효성동은 나에게 있어 세계의 전부였다. 집에서 학교까지, 학교에서 놀이터까지, 놀이터에서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삼각형은 내가 가진 최초의 보금자리였다. 자라면서 근처의 아파트로 이사를 하고, 학교와 놀이터 밖의 다른 장소들을 마주해가며 삼각형은 사각형, 오각형으로 각과 면을 증식시키며 세계를 넓혔다. 그와 동시에 어릴 적의 보금자리는 원래 형태를 잃어갔다.
 성인이 된 후에는 일 년마다 이사를 다녔다. 살아가면서 어느 틈엔가 물건이 점점 늘어나 이사를 할 때마다 남겨두고 오게 되었다. 삶은 물건과 함께한다. 의식하지 못할 정도로 일상적인 모습이 되어간 대상에는 당시의 기억이 새겨져 훗날 지나간 시절에 접속하게 하는 촉매가 된다. 그러나 지내던 집을 떠날 때면 모래성을 허물듯이 조각난 기억을 현관 문 잠금장치에, 저녁을 먹던 식탁에 남겨두어야 한다. 나는 자꾸만 산산이 조각나거나, 끊어져 버리곤 한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집과 떨어진 기억 속 풍경은 점차 마모되어 세부를 잃어버리다 종국에는 어렴풋한 윤곽만이 남는다. 특정한 순간의 뚜렷한 풍경 따위는 사라지고, 무언가를 놓치고 말았다는 쓸쓸함이 기억의 공백을 채워간다. 허나 역설적이게도 그러한 감각과 공백 없이는 풍경에 마음이 가닿지 않는다.
 이제는 내가 머물렀던 점들이 서로 멀어져 사람의 발걸음으로는 잇기 어렵다. 섬과 섬으로 된 기억들. 그 사이의 공간은 비어있다. 기억은 뿌리를 잃고 환영처럼 가로수, 언덕, 타일의 무늬 속에서부터 자기 머리를 들이민다. 잡을 수 없는 그리움, 떠오르지 않는 기억, 그러한 기억을 어렴풋이 더듬거리는 감각을 낯선 아파트 단지 주차장에서, 낯선 고속도로 너머 산능선이에서 만난다. 그리움을 마주치는 모든 모서리는 나의 고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