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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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i_hnn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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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업은 단 하나의 사건을 복기하는 행위에서 발생한다. 여기서 단 하나의 사건은 특별하거나 특수한 상황이 아닌 흔하지만 이상하게 오래 남는 기억* 중 하나이다. 이번 공간에서 다루는 ‘사건’은 작년 11월에 겪었던 ‘그날 가로등 아래에서의 일'이다.
‘가로등 아래'라는 공간은 현실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장소인 만큼, ‘가로등 아래’에서 일어난 사건들은 ‘그날’ 위로 끊임없이 중첩된다. 중첩으로 인해 ‘그날 가로등 아래에서의 일’이 갖는 고유성이 흐려져, 왜곡되거나 일부를 잃어버린다. 이런 불가피한 훼손의 반복은 사건의 손실**을 가속화시킨다.
전시장에 놓인 회화와 조각 그리고 드로잉은 ‘그날 가로등 아래에서의 일’을 고정하기를 시도한다. 작업자는 ‘그날'의 온도, 주변의 움직임, 촉감 등을 반영하여 이미지를 제작하고, 매체를 선택한다. 이 과정에서 ‘그날 가로등 아래에서의 일'이라는 당시 현실은 추상적 형태를 갖는다.
매체의 변화***는 이미 제작된 작업의 일정 부분을 얇게 혹은 무겁게 변형하면서, 발생한다. 손실을 막기 위해 다시 만들고, 덧붙이고, 다시 놓는 과정은 오히려 사건의 왜곡과 손실을 물리적으로 경험하게 한다.
이 작업에서 원형의 변형은 석고 캐스팅 방식에서 가져온다. 석고 캐스팅은 이미 만들어진 물체를 복제 혹은 변형하기 위해 원형을 본떠 만든 석고틀(거푸집) 안에 유동적인 재료를 넣어 굳히는 방식이다. 이번 작업에서는 손실된 사건을 다시 붙잡기 위해 본떠 만든 틀을 변형하고, 훼손하기를 선택한다. 그러므로 전시장에 놓인 서로를 닮은 작업들은 각자가 원본 그리고 거푸집으로서 작용한다.
매일 손실이 나버리는 기억을 오랜 시간 제작하는 조각과 회화로 메우는 과정에서 이 사건은 ‘그날 가로등 아래에서의 일'이나, ‘그저 오해로 제작된 풍경’에 접근하지 못했다. 붙잡기 위한 물리적인 축적은 공간적으로 붙잡지 못한 상실을 채운다.
- 작업에서 다루는 기억이란 하나의 거대한 사건에 연관된 기억이라기보다는, 일상에서 순간을 파고드는 작은 조각과 같은 것이다. 이를테면 가로등 불빛 아래 누군가와 나누었던 시간, 혹은 낮잠을 자고 일어나서 마주친 노을, 정류장 아래에서 맞이한 아침, 선물 받은 아이스크림, 정오의 마룻바닥 같은 것들처럼 말이다. 그 순간은 지나갔지만 이들은 주위에서 매번 유사한 방식으로 마주친다. 그래서 원래의 기억은 더 빨리 묻히고, 왜곡된다.
- 사건의 손실이란 과거와 현재 사이 부재하는 대상을 발견하면서 자각하는 차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부재한 대상 그 자체에서 차이가 생기기보다는 그를 둘러싼 배경적 조건들에서 발생한다. 예를 들어, 진한 색감으로 그려진 회화 <어깨와 가로등>(2023)에 등장하는 가로등 풍경은 매일 유사한 사건이 덧 씌워지면서 처음 제작한 회화를 의심하게 만든다. 어느 시점에서 왜곡이 일어났는지 알 수는 없지만 당시 기억 속 가로등에 가까워지기 위해 다시 만든다.
- 기억의 손실로 인한 작업 과정에서 왜곡된 대상은 매체 / 장르적 변주를 겪는다. 평면은 조각으로(혹은 반대로) 그리고 설치로 연장, 확장, 또는 수렴하며 소실과 생성의 관계를 형성한다. 이는 과거의 순간을 상기해 제작하는 과정에서 당시 경험한 상황적 요소들이 결합되기 때문에 일어난다. 기존의 작업이 이후 작업을 주조하기 위한 거푸집이 되면서 원형과 손실 간의 밀접함에 끼어들어 본다.
전시 전경
가로등 아래, 2023, 석고, 22x15 cm
빛줄기 일부, 2023, 석고에 파라핀과 밀랍, 20x40x13 cm
전시 전경 일부
바람 아래 가로등_가 기댄 빛줄기 일부
전시 전경 일부
바람 아래 가로등, 2023, 석고, 38x58 cm
빛줄기 일부, 2023, 트레이싱지에 오일, 20x10 cm
빛줄기 일부, 2023, 나무 막대, 파라핀, 밀랍, 76x13 cm
전시 전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