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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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ra_100201

Hibernation

물질을 구성하는 재료의 두 성질인 결정질(crystalline) 과 비정질(Amorphous, Non-crystalline) 은 금속과 유리, 수지를 나누는 주요한 특성으로, 각각 독특한 물성을 지닌다.

건축재로 사용되는 일반적인 결정질 물질은 금속과 콘크리트 모래 속 석영이다. 분자적으로 안정된 상태로, 고유의 패턴을 가지고 구성된다. 이들은 큰 구조를 만드는 기초로서, 철근-콘크리트의 형태로 활용된다. 안정된 도시 구조물은 결정성의 원리로 만들어진다. 결정(crystal)은 안정되어 있으며, 일정하고, 질량과 밀도에 비해 큰 부피를 지닌다. 따라서 금속과 결정은 보이는 크기보다 가벼울 수 있다.

이에 비해 유리와 수지(resin) 등으로 대표되는 비정질 물질은 분자적으로 결정 없이 고밀도의 구조체를 유지한다. 유리와 레진은 일반적인 결정 물질(금속)의 부피에 비해 더 높은 질량과 밀도를 가지며, 내부는 분자고유의 결정패턴 없이 엉겨 있다. 따라서 결정과 동일한 크기(부피)일 때, 눈으로 보는 것보다 훨씬 무겁다. 유리와 레진은 투명하고, 무겁고, 불안정하다.

이러한 물성의 관계적 특징을 작가는 두 종류의 물질이 활용된 도심 속 구성물에서 찾는다.
도시를 하나의 작동하는 기관이자 명백한 구조를 가진 ‘결정’으로 보며, 이에 반해 동시에 존재하지만 도시 구조에 속하지 못한 존재를 ‘비정질’로서 바라본다. 건축이라는 구조화의 과정에서 도시를 유지하는 일정한 조경 패턴을 제외한 자연물은 제거된다. 특히 생물은 ‘선별’의 과정을 거치며, 일정한 조경수와 화단을 제외한 모든 땅은 콘크리트에 타설되어 사라진다. 관리할 수 없는 불규칙을 제거하고, 관리 가능한 패턴으로 땅을 개편한다.

그러나 그런 도시의 구조적 건축 속에서도 포함되지 않은 채 독자적으로 생존하는 인간 외 생물이 존재한다. 비둘기와 로제트(Rosette) 잡초 등, 이른바 ‘유해생물’이다. 다양성이 제거된 도시가 만들어낸 인위적인 극한 상황에서도 이들은 살아남는다. 그리고 살아남아 유해종으로 취급된다. 시멘트 위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생태는 단시간에 급하게 만들어진 도시의 부산물이자 패턴에서 있어서는 안되는 불안정으로, 비정질적이다. 이러한 불안정의 파고듦은 안정을 추구하는 건축 구조의 붕괴를 만든다.

작가는 이러한 도시와 생물의 구조적 상반관계에 주목한다. 도시에 대한 생물의 유리상태를 각각에 대응하는 물질로 표현한다. 보이는 것보다 무거운 물질인 유리와 수지로 구성된 비둘기와 잡초는 실제의 스케일을 가지지만, 내부의 구조는 실재와 완전히 다르게 만들어진다. 생물의 존재에 투영되는 시선은 유리처럼 투명하지만, 존재감은 실재보다 큰 질량을 가진다. 동일한 무게의 시멘트에 비해 부피는 작지만, 보다 밀도 있다. 유리생물의 조각은 보이는 것(부피)보다 많은 내부(밀도)를 가진다. 작가는 도시 틈새에서 사라진 생물을 재현하는 동시에 틈 사이에서 압축된 생물의 밀도를 표현한다.

큐브와 블록의 시멘트를 파고들며 자라나고 죽어가는 투명한 생물의 조각은 나아가 결정구조의 침습과 붕괴를 시각화 한다. 도시가 파괴한 자연은 살아남은 생물을 통해 도시의 파괴로 돌아온다.
시멘트를 탈출한 유리와 수지로 만들어진 작은 조각의 집합은 재현을 넘어서 재결정화(실투, devitrification)를 통해 독자적으로 무너진 패턴을 스스로 재건한다. ‘유용한 재료’로서 일시적으로 가다듬어진 유리와 레진에게 발생하는 실투 현상은 산업적 가치를 잃게 만든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은 곧 막을 수 없는 물질의 본연이자 자연 그 자체이다.

유리와 레진은 겉보기는 굳은 고체이지만 내부는 여전히 유동적으로, 내버려둬도 언젠가는 다시 결정이 된다. 유리(遊離)생물의 조각은 이러한 물질의 성질을 통해 언젠가 다가올 이들의 자발적 재생과 복원을 표현한다. 시멘트 위에서 납작하게 평면적으로 살아남은 로제트(rosette)식물은 수지상 구조(dendrites)의 눈송이와 성에를 닮은 입체-결정으로 자라난다. ‘잡초’의 독립은 곧 이것이 시멘트와 도시의 부속이 아님을, ‘도시의 언어’에서 벗어나 ‘개별적으로 살아가는 식물’임을 인지하게 한다. 지지될 수 없어 보이는 유리의 조각은 이것의 목적이 영속이 아님을 말한다.
곧 으스러질 듯한 구조는 영원하고 견고한 보존보다는 침식과 퇴적을 반복하는 근원적 물질의 순환을 향한다. 그리고 영원이 굳은 듯한 모습은 아직 끊이지 않은 미약한 생명을 지닌다. ‘죽음’이 아닌 ‘동면(hibernation)으로, 각각의 물질 조각은 멈춰 있지 않고 다음 단계로의 생동을 기다린다.



전시전경




전시전경




Century ghost, 유리, 522_380mm, 2022
When I was Century, 디지털사진, 2019




flake, 유리, 레진, 가변설치, 2023



Hernia 1, 유리, 시멘트, 258_395_300mm, 2023


Hernia 3, 유리, 시멘트, 258_395_600mm, 2023



is, 유리, 레진, 가변설치, 2023
Frost hibernation, 레진, 1500_500mm, 2023




lost child, 유리, 가변설치, 2023




pool,유리, 레진, 시멘트, 가변설치, 2023
Glassy Concrete 2, 유리, 시멘트, 685_369_182mm 2023




wreck, 유리, 시멘트, 450_600mm, 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