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환  


돌아오는 시작

 내가 걸어 들어간 곳은 검게 타버린 숲이었다. 백 년 된 소나무로 가득해서 산책할 때면 빛이 들어오지 못할 정도로 무성한 숲이었다. 짙게 퍼지는 솔 향과 땅에는 갈변이 된 솔잎이 천천히 거름이 되어가고 있었다. 바람은 숲 사이를 통과하지 못했고 비도 그 밑에 있으면 옅어졌다. 산불은 사람이 손 쓸 수 없을 만큼 빠르고 거세게 번졌고 스스로 멈췄다.1) 새까맣게 그을린 둥치, 건조해져서 뜯겨나간 나무껍질, 바람에 흩날리는 재. 불이 진화되자마자 찾은 늦겨울의 공간은 땅에 온기가 아직 남아 한여름 같았다. 뜨겁게 달궈진 땅에 서서 올려다본 하늘은 메마른 나뭇가지 틈으로 회색 구름이 끼었다. 서늘한 바람이 둥치를 지나 들어왔다. 몇 달 뒤 여름이 왔을 때 숲 터를 찾았다. 푸른 작은 덩굴과 꽃이 곳곳에 자라났다. 큰 나무의 그림자 때문에 자라지 못했던 생명이 자리를잡았다. 검고, 붉고, 푸른 그곳에서 나는 오래도록 서있었다. 산불의 경험을 계기로 불과 자연의 순환에 관한 작업을 해왔다. 불이 붙고, 확산하고, 꺼져가는 과정을 시퀀스로 나눠 각 화면에 옮겼다. 평면이 군집을 이뤄 순행하는 시간과 이야기를 만들어내길 바랬고, 그 과정에서 경외한 불에 관한 애증이 담겼다. 불이 꺼진 후에 대한 작업 <복원-내버려두고 기다려서, 2023>에서는 재생하는 자연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인간이 초래한 재난을 회복하는 땅과 거대한 나무 밑에서 자라지 못하던 식물종이 형성되는 것은 자연과 인간의 관계와 일종의 비유로 새롭게 생각해볼 거리가 있다. 나아가 동식물의 자생적 활동을 통해 인간의 활동 없이 작동하는 자연을 상상해보고자 한다.

1) 4월 4일 19시 17분경, 강원도 인제군을 시작으로 고성군과 속초시, 강릉시와 동해시 지역에 잇따라 발생한 초대형 산불이 일었다. 고성군 토성면 원암리 미시령터널 인근 주유소 앞 도로 변 전신주 개폐에서 발화가 시작되어 발생한 산불은 국지성 강풍이 매년 반복되는 백두대간 동쪽 지역의 지형적 특성으로 초속30m에 이르는 강풍으로 방대하게 확산했다. 4월 5일 08시 28분 주불 진화 완료 전까지 2명이 숨지고 11명이 부상을 입었고 인근에 거주한 4000여명이 대피했으며 1757ha에 달하는 산림과 주택과 시설물 총 916곳이 전소되어 여의도의 65%정도의 면적이 피해를 입었다. 「2019 강원 동해안 산불 백서」. 2019, 행정안전부








08시 13분 컨테이너 옆, 2023, 종이에 연필·오일파스텔·수채, 31x43cm



21시 38분 정원 모서리, 종이에 연필·오일파스텔·수채, 31x43cm, 2023




다가오는 연기, 캔버스에 목탄·아크릴·유화, 162x129.5cm, 2022




들러붙은 풍경, 캔버스에 유화, 91x72cm, 2023




발화, 캔버스에 먹·아크릴·유화, 194x129.5cm, 2022




복원_내버려두고 기다려서, 194x388cm, 캔버스에 혼합재료, 2023




성장통_ 옆, 캔버스에 유화, 116x72cm, 2023



성장통_ 위, 캔버스에 유화, 116x91cm, 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