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혜리
@hyerifromhrhp123@naver.com
<구름 기억록 (Cloud Memories)>
나의 작업은 개인이 기억을 더듬는 방식을 풍경으로 기록하는 것에서 시작해, 여러 사건들을 통해 그 풍경을 확장시키는 방향으로 진행된다.
오랫동안 펼쳐지는 어두운 잠을 잃어버렸다. 그래서 눈을 감고 눈앞에 벌어지는 장면들을 손끝으로 마디마디 느낀다. 머릿속은 하나가 다른 하나를 침범하며 과장하거나 서로에 의해 일부분이 분절되며 왜곡되는 방식으로 흘러간다. 나는 그 장면에서의 나무와 구름과 언덕과 물결과 바위의 단위들을 내밀한 기억의 단위라고 명명한다. -<잠 못드는 사람들>: 아연판에 에칭
일련의 사건들은 개인에게 동시다발적으로 닥쳐오듯 일어난다. 구름이 번개가 되고 번개가 물결이 되고 물결이 먹구름이 된다. 먹구름은 다시 번개가 되고 물결처럼 끊어질 수 없이 순환된다. 어느 하나 붙잡고 해결할 수 없는 사건들이 겹치고 합쳐진 이 모습은 우리가 살아가는 인류세(Anthropocene)의 하늘이다. ‘unweder’(운웨더)은 앵글로-색슨족의 고어로 너무 극한의 날씨라서 마치 외계에서 온 것처럼 느껴지는 기후 상태를 지칭하는 말이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고대에는 믿음으로 존재했던 비와 바람, 번개와 천둥, 등 날씨를 다스리는 신들을 현재 구름의 모습으로 다시 소환시켜 오늘날의 증상들에 대한 애도를 한다. - <바람의 신들> 3연작 : 캔버스에 유채(Davy’s Gray)
하나의 그림은 하나의 사건이 아니다. 여러 가지 사실들이 서로 얽히고 설켜 하나의 전체처럼 보일 뿐이다. 각각의 요소는 개별적으로 호명되어야 하며 그림이 오직 큰 전체의 덩어리로만 이해된다면 회화는 풀이 죽어버린다고 생각한다. 열 네 장의 석판화는 모두 같은 그림이지만 석판화의 복잡한 프린트 공정에서의 실수들로 각자 결함이 생겨 분명히 서로 다르게 된 풍경들이다. 이 나열을 따라 고유하게 쭉 흘러가는 시간성을 느낄 수 있다. 허공에 일렬로 된 배치에서의 연속성은 영상에서의 스틸 컷들과 닮았다. 그렇게 나는 구름처럼 흐르는 일련의 풍경을 만든다. - <리토-구름(Litho-Nuages)> : 석판화 프린트 14장
나는 더 이상 풍경들을 분절시켜 재조합하지 않고 단 하나의 거대한 구름을 파도처럼, 불 속처럼, 모래바람처럼 흐르듯 연결해 기억 그 이상의 것을 전달하기 시작한다. 확대된 구름 속에는 풍경과 기억을 초월한 무언가가 분명 변화하며 흘러가고 있다는 묘한 운동성이 있다. 캔버스의 스케일이 커지면서 개인적인 은유에서 시작한 내밀한 풍경은 지구상에서 일어나는 역사와 사건들이 순환하는 모습으로까지 확장된다. 그리고 나는 이러한 역사성을, 아주 오래된 아날로그 방식을 가진 회화와 매우 무거운 돌에 드로잉을 기억시켜 떠내오는 석판화의 기록방식으로 표기하고 있다.- <가장 촉각적인 구름>: 캔버스에 유채 (Davy’s Gray), <가장 무거운 것의 흐름에 대하여 (부제: The World of Anthropocene)>: 크래프트지에 석판화 프린트
사건들의 연쇄적인 악순환 속에서 하나의 해답을 낼 수 없이 흘러가는 세상이라면 나는 각각의 개인들을 기억하고 호명하는 방식으로 살아가며 작업을 하겠다는 다짐을 한다.
전경
잠 못드는 사람들, 2021.5. 아연판에 에칭, 43x26.5cm
(좌) 바람의 신들 2_ 두 개의 태양 (unweder_2), 2022.11. 캔버스에 유채(Davy’s Gray), 65.1×90.9cm
(우) 바람의 신들 3_ 북두칠성 (unweder_3), 2022.12. 캔버스에 유채(Davy’s Gray), 72.7×100cm
가장 촉각적인 구름, 2023.10. 캔버스에 유채(Davy’s Gray), 162.2×130.3cm 외
가장 무거운 것의 흐름에 대하여 (부제_ The World of Anthropocene), 2023.12. 크래프트지에 석판화 프린트, 56x76cm
리토-구름(Litho-Nuages), 2023.4. 석판화 프린트 14장, 천장 설치
리토-구름(Litho-Nuages) 클로즈업
가장 촉각적인 구름 2, 2023.12. 캔버스에 유채, 162.2×130.3cm 외
(우) 호명하기 하나, 2023.12. 캔버스에 유채(Davy’s Gray), 53×72.7cm
(좌) 호명하기 둘, 2023.12. 캔버스에 유채(Davy’s Gray), 53×72.7cm
구름 두폭화 습작 (Cloud Diptych_etude), 2023.12. 철판 용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