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주은
000zoony@naver.com피부에 파여있는 모공을 바라보며 그림을 그려나가기 시작하였다. 날마다 미세하게 늘어나는 모공에 공포를 느끼며 구멍적 이미지가 점차 발현되었다. 모공은 자연적인 법칙에 의해 매일 미세하게 변화하는 통제 불가능한 영역의 이미지로 작동한다. 모공의 이미지는 작업 내에서 일종의 수치심과 연결된 콤플렉스적 이미지로 재현되고 있다. 끊임없이 콤플렉스를 목격하는 과정에서 모공의 구멍을 이미지로 재현하는 것은 그 이미지에 집착을 만들어내는 동시에 해방감을 가져다 주는 모순적인 상태에 놓이게 한다. 전시장 곳곳에 있는 디지털 드로잉은 피부의 모공을 과장한 인물이나 구멍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수치심을 느꼈던 순간들은 작업에서 재생된다. 전시장 중앙에 설치된 <먼지 스크린>은 버려지는 옷들을 바느질한 작업이다. 옷을 작업하는 과정에서 탈락되는 옷을 선택하는 과정은 옷이 만들어내는 어떤 이미지를 버릴 것인가에 대한 선택이 된다. 즉 타인에게 보이기 싫은 콤플렉스적인 이미지를 지속적으로 선택해야만 하는 상태로 작업을 이어 나간다.
옷에서 탈락되는 ‘먼지’들은 수치심의 상태와 동일시되어 이미지화 된다. 먼지는 끊임없이 생성되고 동시에 없어져야 할 제거의 대상으로 존재한다. 먼지를 만들어 내는 주체와 그것을 없애고 싶은 주체는 동일하며, 생산과 제거의 과정이 반복될 수 밖에 없다. 이 먼지는 일반적으로 수치스럽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놓여있는 상태와 동일하게 존재한다. 수치심과 같은 속성들은 여전히 일상에서 모호하게 존재하고 있었다.
이렇게 수집된 작업들은 잘리기도 하고 바느질하여 다시 붙어 하나의 스크린이 되기도 하며, 스크린에는 다시 한 번 먼지 이미지가 투영된다. 작업들은 각자의 연결점으로 인해 유기적으로 존재하기도 하지만 빛의 끊김이나 각기 다른 이미지의 크기, 천과 천 사이에 틈과 같이 시각적 구멍이 생기게 된다. 이 시각적 구멍으로 인해 생기는 혼란스러운 상태는 잠시나마 모호하게 존재했던 수치스러운 것을 현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