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세은
awsedr1226@gmail.com@an_sen_
어떤 대상과의 접촉의 증거는 잠시 남아있는 잔존감만이 유일하다. 표면의 감각이 남아 손을 징하고 울린다. 맞닿음의 흔적을 남기고 싶다는 생각과, 접촉했을 때의 촉각을 드러내고 싶다는 생각에 다시 대상을 만진다. 밀랍은 60도의 온도에서 녹기 시작한다. 이는 두 사람의 온도가 함께한다면 충족 가능하다. 단순한 덧셈으로는 가능한 이 녹음의 온도는 사실 만들어질 수가 없을 것이다. 다양한 무게와 두께의 포개짐으로 만들어진 밀랍의 표면은 반복되는 만짐에 설핏 녹을 것 같다. 하지만 그것은 불가능하다.
접촉을 통해 만들어지는 몸짓의 가능성에 흥미를 가지고 있다. 접촉의 촉각적 강도는 조용하며 동시에 어딘가 지긋하다. 그 강도는 가벼우며 어루만진다. 다른 사물의 표면에 닿는 순간과 그 이후의 감각에 집중해 본다. 잔존하는 듯한 감각이 우리에게 남아있다가 이내 없어진다. 어떠한 책에 따르면 ‘우리가 어떤 사물을 더듬고 만지는 것은 그 존재를 너무 알고 싶어서, 궁금해서’라고 한다. 우리는 과연 만지는 것으로, 두드려보는 것으로 그 사물에 다가가는 것일까. 분명히 만지는 것으로 알게 되는 것이 있다. 하지만 만져도 궁금증이 끝나지 않는다. 궁금한 대상과 맞닿고, 서로를 감각하고 나면 과연 그 대상에 대해 우리가 무엇을 알 수 있을지 의문을 제시해 본다. 어쩌면 아무것도 알 수 없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알 수 없기에 사실은 만지고 싶은 것일지도 모른다. 이 모든 것들은 접촉을 통해 만들어진다. 이 작업들로 우리 주변의 존재에 대한, 해결이 불가능할지도 모르는 궁금증을 위한 끝없는 되짚음이 되고 싶다.
PCL[1]은 밀랍과 비슷하게 60도의 온도에서 녹기 시작한다. 수많은 밀어내기와 누르기, 두드림으로 만들어진 조각의 표면은 부드럽고 매끈하여 접촉에도 쉽게 마모되지 않는다. 이 조각과의 접촉은 상상만 가능한, 보이지 않는 아주 적은 입자만을 맞닿음의 흔적으로 손에 남긴다.
호접란의 적정 생육온도는 20-25도이다. 호접란이 필요로 하는 빛의 강도는 강하지 않다. 이 빛의 성질은 아침나절의 햇빛에 가깝다. 약간의 습기를 가지며 미세하게 그늘진 환경에서 낮 기온이 25- 26도로 한 달 이상 유지되면 난의 꽃대가 올라온다. 난의 환경은 왜 인지 촉각적이다. 그 이유로는 온도가 가장 크다. 낮이 긴 6월의 시작이 연상되는 이 온도에서 각 사물의 살갗은 더 드러나고, 사물 간의 거리감은 가까워진다.
난의 대는 줄기로서 연결과 지탱을 담당한다. 호접란의 대는 팽팽하며 곧은 동시에 굴곡을 가진다. 그 대의 끝에 달린 꽃은 공기 중 작은 진동과 변화로도 흔들릴 것만 같은 떨림을 연상시킨다.
포개지는 촉각적 강도는 작은 대비로도 변화가 발생하며 유연하다.
녹이며 생긴 투명한 얼룩들을 포개 본다.
이 작업들은 수많은 대 - 줄기가 지나가는 공간이다.
“음악을 듣는 것은 신체가 보편수학이 되려는 몸짓이다.
신체가 이럴 수 있는 것은, 음향의 진동이 피부를 투과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진동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피부, 인간과 세계 사이의 이 무인지대는
이로써 경계선에서 연결로 바뀐다.”
– 빌렘 플루서 <몸짓들>
[1] PCL(Poly Capro Lactone)은 생분해성 플라스틱으로 인체에 무해하다.
무제,2023,pcl,철,87x159.5x72cm
무제, 2023, pcl,철,87x159.5x72cm
맞대고 듣기,2023,나무판넬,밀랍,유화,80x60cm
dancedance,2023,pcl,가변크기
넘겨서 듣기,2023,종이,연필,57x38cm
무제,2023,pcl,유토,9.5x16x7.5cm
무제,2023,나무판넬,밀랍,연필,20x27_20x27cm
전시전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