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지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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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시환상곡
Primitive Fantasia Recipe
언제, 어디에서 태어났는지는 정말 중요하지 않았다. 나의 고향이 여름이 아니듯, 모든 기억과 감상이 각기 시원을 갖고 흐르는 것은 아니었다. 존재가 명확해 보이는 몇몇 감정도 실타래를 풀고 나면 행방을 숨긴 채 사라졌다. 비로소 해결되었나? 그렇다면 여기의 흔적들, 보이지 않는 흔적 들—떨림과 편린*, 혹은 남겨진 ‘기분’, 울림, 영혼, 몸으로 감지되지만 재현되지 않고, 스스로를 의식하는데 뜻이 없는 둥근 영혼들—그것들도 다만 가라앉아 사라지기를 기다리고 있는 걸까.
그해 여름은 이런 잡음들로 가득했다. 장소마다 온갖 벌레 울음과 열기로 가득했고, 생생한 움직임은 울림에서 울림으로 몸을 옮기며 나아갔다. 이미지도 사진도 아닌 자글거리는 분위기와 노이즈. 모든 것들이 동적으로 변하여 침묵마저 켜는 밤, 어둠이 오거나 잠에 든다고 하여 그것들은 사라지거나 존재하기를 멈추지 않았다. 원시(原是)** 그것은 언제나 주어져 있으며, 순간적이고 동시적이었다. 아득할수록 가깝게 느껴지는 어떤 음악적인 것이 여름에 있었다. 이해보다 감지를, 응시보다 태만을 바라며, 그렇게 하나의 여름이 아닌 모든 여름으로부터 어떤 음악을 길어오고자 했다.
결말 혹은 기원. 그리운 이가 그리움을 모르며 추억이 외로움의 기원임을 깨닫는 순간, 사람은 운명에서 우연으로 눈을 돌리게 된다. 유종(有 終)의 존재에도 위로받지 못하는 날. 그날의 사람은 오디세우스가 그러했듯, 스스로 몸과 얼굴을 닫은 채 바다를 유영하는 모습일 것이다. 기꺼이 유혹당하고 유혹하고자 했던 이들은 모두 침몰되어, 가르치고 가르침을 받는 일만 남은 시간 위에서 말이다. 존재의 음악을 듣는다는 것, 들리지만 들리지 않고, 보이지만 보이지 않는 침묵을 마주하는 것. 그것은 마치 환상과도 같은 일, 세이렌들에 기꺼이 유혹당함 일지도 모른다.
* 박준상, 「불협화음」,『철학논총』(새한철학회 편), 제69집, 2012 참조.
** 원시(原是) [부사] 처음부터 또는 근본부터. =본디. 원시, 국립국어표준국어대사전, 2018-07-19 21:28:33
전시전경
세이렌들의 침묵, 단채널 비디오, 10분 2초, 2023
전시전경
원시환상곡, 단채널 비디오, 15분 50초,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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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이렌들의 침묵, 단채널 비디오, 10분 2초,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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