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하정
estellehj8031@naver.com사후
1.
“자네는 ‘끝’ 없는 세계를 알고 있나?”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런 곳이 있다는 걸 믿을 수 없겠지. 믿지 않아도 돼. 하지만 내가 ‘사후’에 다녀왔다는 진실은 사라지지 않는다. 死後라고 생각해도 좋고, 알려지지 않은 어떤 땅의 이름이라고 생각해도 좋아.”
그가 목소리를 낮췄다.
“그곳엔 죽음도 찾아오지 않는다.”
2.
손과 발이 아닌 촉수와 뼈로 이루어져 있고, 걷지 않고 날아다니거나 기어가는 생물을 상상했다. 다리가 여럿 달린 곤충이나 심해에 사는 물고기, 혹은 내장과 비슷한 이미지를 떠올릴 수 있었다. 생물은 사람들 사이에서 ‘괴물’이라고 불렸고, ‘징그럽다-나와 다르기에’는 감각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나는 섬뜩함과 동시에 ‘흥미롭다-나와 다르기에’는 감각을 느꼈다.
인간은 무엇을 무서워할까? 왜 피와 뼈, 내장이 드러나면 징그러워할까? 나는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것’을 무서워한다고 생각했다. 인간은 살아서 죽을 수 없기에 영원히 죽음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다. 그렇게 죽음은 모든 인간 공포의 근원이 되었다. 피와 뼈, 내장은 육체를 이루는 안락한 틀에서 벗어나면 죽음의 이미지가 된다. 그것들이 새로운 생물이 된다면 어떨까. 죽어야 할 것이 살아서 움직이면 죽음을 초월할 수 있지 않을까. 괴물이 된 죽음의 이미지는 더 이상 징그럽지 않고 오히려 아름다웠다.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메커니즘을 가지면 ‘괴물’이 된다. 나는 괴물을 동경했고, 그들이 사는 세계를 그리고 싶었다. 괴물이 사는 초월적 공간의 이름을 ‘사후’라고 지었다. 사후의 괴물과 사후를 드로잉하며 그들에게 어울리는 지지체를 찾아다녔다. 그때 햇빛을 받아 빛나는 커튼이 눈에 들어왔다.
3.
얇고 거대한 천은 비현실적인 감각을 준다. 빛이 투과되기도 하고 빛을 반사하기도 한다. 종이처럼 납작하다가도 쉽게 형태가 일그러지고 부풀어 오르기도 한다. 연약해 보이지만 이미 흡수된 그림은 물에 흐려지거나 사라지지 않는다. 천에 펜으로, 연필로, 붓으로 그림을 그린다.
다른 공간에 진입하기 위해선 문을 열어야 한다. <문>은 다른 차원으로 가는 관문이다. 현실과 비현실은 얇은 천 하나를 경계에 두고 있다. 어느 쪽에서 열어도 열리는 문처럼, <문>은 앞면과 뒷면이 구분되지 않는다. 붉은 천에 그림자진 문은 사후의 존재들에게 침식된다.
만약 내가 만들어 낸 것이 괴물이라면 사랑할 수 있는가? 사랑하지 못한다면 죽이는가? 붉은 천 연작인 ‘사랑’과 ‘살해’는 신과 괴물의 관계를 이야기한다.
‘연옥’은 가톨릭에서 말하는 사후 세계 중 하나로, 지옥에 갈 만큼 중죄를 짓지 않았지만, 천국에 갈 만큼 깨끗하지는 못한 사람이 가는 중간지점이다. 연옥에 관한 이야기 중에서 ‘살아서 남긴 음식을 전부 비벼 먹어야 한다’는 말이 인상 깊었다. 나는 모든 것이 뒤엉키고 비벼진 하나의 거대한 섬을 그렸다. <연옥>은 괴물, 나의 사념, 다른 사후세계들의 생물, 종교적 요소가 뒤섞여 만들어진 사후의 지도다.
문, 천에 패브릭 마카, 110x180(cm), 2023
문, 천에 패브릭 마카, 110x180(cm), 2023
문, 천에 패브릭 마카, 110x180(cm), 2023
신은 괴물을 사랑하는가, 천에 패브릭 마카, 110x180(cm), 2023
신은 괴물을 사랑하는가, 천에 패브릭 마카, 110x180(cm), 2023
신은 괴물을 살해하는가 , 천에 패브릭 마카, 110x180(cm), 2023
신은 괴물을 살해하는가, 천에 패브릭 마카, 110x180(cm), 2023
연옥, 천에 염색 물감, 220x360(cm), 2023
무제, 종이에 수채, 14x20(cm), 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