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영
바라기와 인왕산
인왕산에는 돌, 물, 빛이 만든 형언하기 힘든 에너지가 느껴지는 공간들이 있다. 그곳에는 다양한 믿음의 흔적들과 행위가 존재한다. 나는 믿음의 대상이 되었던 장소 또는 사물들을 평면으로 가져온다. 나는 감지할 수 있지만 감각할 수 없거나 혹은 감각들의 총체인 그것들을평면에 담기를 바란다.
믿음에는 믿는 자들의 삶이 녹아 있다. 간절히 바라기 때문에 불안해지고, 불안함을 잠재우기 위해 소원을 들어주는 큰 존재를 만들어내 믿는다. 믿음이 필요한 상황에서 맞닥뜨린 압도감은, 그 장소 혹은 사물을 믿음의 대상으로 만든다. 의미가 부여되는 대상과 그것이 위치하는 장소,그리고 그곳에 놓여있는 사물들이 장소의 혼을 불러 일으킨다. 사람들의 기도하는 행위와 믿음의 관습으로 이것은 더욱 가시적으로 드러난다.
약으로 치료하는 것에 실패하고, 큰 수술을 앞둔 상황에서 코로나가 발생했다. 멀리 돌아다닐 수 없는 상황이었으므로 집 앞에 있는 인왕산으로 산책을 다녔다. 그리고 압도감을 느끼게 되는 장소들을 발견했다. 수술이 두렵고 건강하기를 간절히 바랐던 나에게 인왕산은 믿음의 대상이 되었다. 불안함이 생기면 인왕산을 찾는다. 간절한 바람을 가진 사람들을 볼 수 있다. 어쩌면 누군가의 바람이 이뤄지지 않아야만 이뤄지는 바람들. 나도 그들 중 하나다.
인왕산은 성곽을 기준으로 도성과 도성이 아닌 곳으로 나뉘어 있다. 도성 안에 존재할 뻔했지만 그럴 수 없었던 선바위가 있다. 선바위는 소원을 빌러 오는 사람들과 무당들이 기도를 하는 곳이다. 그들이 켜 놓은 촛불이 밤새 그곳을 어둡지 않게 밝힌다. 그 빛은 장소의 분위기를 완전히 바꿔 놓는다. 선바위에서는 바람을 가진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는 서울이 보인다. 그들이 바랐던 소원의 결과물이었을 건물들과 빛이 아주 작고 넓게 펼쳐져 있다.
“그렇다면 장소란 무엇을 뜻하는가? 확실히 장소는 추상적 위치(location) 그 이상을 의미한다. 장소는 물질, 형태, 질감 그리고 색깔 등을 지닌 구체적 사물들로 이루어진 총체이다. 이러한 사물들은 장소의 본질이라 할 수 있는 “환경적 성격”까지 규정짓는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한 장소는 최종적으로 “분위기” 같은 것으로 현상된다. 그래서 우리가 장소라고 말할 때는 그것은 이미 질적인 ‘총체적’ 현상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 분위기는 한낱 물리적 공간적 관계들로 분석하고 환원하는 순간, 그 장소의 구체적 본성은 우리의 눈앞에서 사라질 것이다.” 1,2
– 크리스티앙 노르베르크-슐츠(Christian Norberg-Schulz)”
1. Christian Norberg-Schulz, 『Genius Loci: owards a Phenomenology of Architecture』, Academy Editions, 1979, pp.6-8.
2. Christian Norberg-Schulz, 『장소의 혼: 건축의 현상학을 위하여』, 민경호 외 3인 역, 태림문화사, 2001.
개기월식, 2023, 캔버스에 오일, 219.7 x 294.0 cm
구경, 2023, 캔버스에 오일, 40.9 x 53.0 cm
국사당, 2023, 캔버스에 오일, 53.0 x 40.9 cm
바라기, 2023, 캔버스에 오일, 130.3 x 160.2cm
소원초, 2023, 캔버스에 오일, 53.0 x 72.7 cm
인왕산 선바위2, 2023, 캔버스에 오일, 97.0 x 162.2 cm
초, 2023, 캔버스에 오일, 72.7 x 53.0 cm
호랑이1, 2023, 캔버스에 오일, 72.7 x 100.0 cm
전시전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