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예원

Lee Yewon
tl127@naver.com



물을 기다리며.

  나는 주로 철을 재료로 하여 조각을 만든다. 철판을 무작위로 자른 뒤, 그 조각들을 서로 용접하여 이어 붙이는 방식이다. 먼저 큰 철 조각들을 헐겁게 이어 조각의 형태적 윤곽을 만든다. 철 조각들 사이의 유격은 용접을 통해 거칠게 메우거나 거기에 적당히 맞는 다른 작은 조각을 끼워 넣는 방식으로 채운다. 용접을 통해서 뜨겁게 열이 올랐다가 식기를 반복하는 철은 계속해서 조금씩 휘어지고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굴곡이 발생한다. 완성된 조각에는 조형의 과정이 그대로 남는다. 용접 과정에서 그을린 조각은 불탄 듯 보이지만, 사실 그것은 잘 타지 않는다. 불에 타도 사라지지 않는 그 덩어리를 닮고 싶다.

  고통에서 홀로 유리된 것과 같은 감각에 대해서 생각한다. ‘고통’과 나의 거리감에 대해서 곱씹는다. 고통은 마치 불을 닮아, 나는 스스로를 불을 맴도는 사람으로 여긴다. 동시에 불을 멀리서 바라만 보는 구경꾼인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불에 닿으려면 불에 뛰어들어 함께 타버려야 하는 걸까. 사실은 그 불속에 있는 것이 내가 아니라서 다행이라고 생각한 순간도 있었다. 같이 타버리고 싶다고 생각하다가도 뜨거워 도망가고 싶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불속에 내가 사랑하는 것이 있어 나는 자꾸 돌아보고, 돌아왔다.

  불에 가까이 가면 갈수록, 불과 나 사이의 거리가 줄어들수록 그 거리는 아주 작은 단위까지 가시화된다. 곱씹으면 곱씹을수록 닿을 수 없다는 감각은 더욱 강화된다. 이내 ‘불가능하다’는 무력감도 따라온다. 가까이 다가가다 끝내 닿지 못하고 되돌아오면 내가 그렇게 줄인 거리는 너무 미미하고 작아서 결국 나의 움직임은 고작 ‘진동하는’ 상태에 머물렀다. 하지만 나는 되돌아오기 위해서라도 앞으로 가야 한다. 어디에도 정지하지 못하는 임의적인 상태가 ‘닿을 수 없음’이라는 쉬운 결론에 도달하지 않기 위해서 할 수 있는 최소한의 행동이라면 쉬운 안정보다는 지금의 불안을 ‘생기’라 부르고 여기에서 그냥 진동하기로 한다.

  이 곳에 가득 차오를 물을 기다리며.

 


<4-1 2+1>, 2023, 철판에 용접, 135.5x91x121cm




<불-구경>, 2022-2023, 철판에 용접, 83.5x72.5x246cm
<MURMUR> , 2023, 철판에 용접, 41.5x62x242cm
<any>, 2023, 철판에 용접, 77x49x258.5cm




<불-구경>, 2022-2023, 철판에 용접, 83.5x72.5x246cm




<불이 났다(고 들었다)>, 2023, 철판에 용접, 71.5x66x222cm




<날개>, 2023, 철판에 용접, 92.5x78cm
<감싸안아받다>, 2023, 철판에 용접, 53x121x138.5cm
<피부 더 아래>, 2023, 철판에 용접, 105.5x114cm




<stain steel>, 2022, 철판에 용접, 85.5x64x106.5cm
<물고기>, 2023, 철판에 용접, 101.5x101x21cm




<뼈>, 2022-2023, 원형강, 가변 설치




<커비>, 2023, 철판에 용접, 구슬, 실, 종이, 락카, 글라스데코, 도자, 가변 설치




<그렇게 태어난 불은>, 2022-2023, 원형강, 철판에 용접, 138x65.5x22cm




<물은 가장 낮은 곳부터 찬다>, 2023, 철판에 용접, 86x56.5x292c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