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현지
@skadaborgskadaborg@naver.com
1. <빈 잔(Empty Cup)>, 2023, 단채널 영상, 2.3:1, 컬러/흑백, 사운드, 9분
간혹 주위의 대상들과 개인들이 계속해서 수정되는, 혹은 그래야만 하는 환경에 놓인 것처럼 보인다. 그 속도는 갈수록 가속화되거나 개입을 통해 조절되기도 한다. 이제 이미지를 다루는 데 있어 우리 근처에 수많은 방법이 산재해 있는 것처럼, 무언가를 새롭게 만드는 것만큼 다시 그것을 배제하거나 대체하는 것 역시 간편한 일로 여겨진다.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롭게 등장하는 다양한 프로그램의 기능들이 동시에 이를 돕는다. 하지만 이미지를 포함해 실제로 겪는 사건과 사물이 우리에게 남기는 것들은 완벽하게 소멸하지 않고 일상의 비물질적인 잔여물이 된다. 기억과 기억의 파편이 되어 머릿속에서 자동 재생되는 상 등이 여기에 속한다. 상들은 서로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듯하다가도 연속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하면 금세 뒤섞이기도 한다.
이 단편적이지만 직접 수집되고 변형된 푸티지들을 조합하며 동시에 남겨진 존재에 대해 이야기해 본다.
그러기 위해 일종의 연상작용을 의도하며 실제 장소, 인물, 사실에 기반한 허구적인 서사를 포함한다. 구체적으로 사용한 키워드에는 애매한 시기를 거쳐 상징적인 의미를 획득하는 상상의 동물 ‘용’, 사물을 점군으로 인식하는 공간 스캔과 웹상에서의 지연 현상을 의도한 편집 방식 등이 있다. 덧붙여 인물의 외형을 드러내는 대신 1인칭 시점 및 원근의 변화를 통한 몰입을 활용한다.
2. <낡은 벽화(Old Mural)>, 2023, 아연판, 부식액, 포장지, 프레임, 27x39cm
어느 관광형 벽화 마을에서 예전부터 마주치던 벽화에는 한 아이가 귀를 막고 혼자 폭죽놀이를 하는 자세를 하고 있다. 시간의 흔적이 드러나는 벽의 표면을 매끄러우면서도 흠집이 잘 나는 얇은 철 표면 위로 옮겨와 본다.
각인한 깊이와 마찰한 흔적, 눌린 자국은 한눈에 잘 보이지는 않지만 시선의 위치를 다르게 할 때마다 빛을 반사하거나 선명해지는 순간이 생긴다. 그렇게 보려고 노력하고 있다.
3. <비석들(Gravestones)>, 2023, 아크릴판, 잉크, 판화지, 프레임, 21x30cm
타인의 비석 사진들을 검색하다 보면 제각각의 디자인을 초월해 공통으로 추구하는 바가 있음을 어렴풋이 감지할 수 있다. 이를 묘사한 장면은 무언가를 마주하며 흥미를 갖는 동시에 이미 소진된 것으로 여기는 이중적인 심리를 염두에 둔다.
4. <허수아비(Scarecrow)>, 2022, 유리 수조, 아크릴 덮개, 젤 왁스, 수세미, 30x45x45cm
부실한 기념의 형태를 가늠하여 재현해 보려고 한다. 예를 들어 미디어에 의해 대상에 대한 향수가 복제되는 순간부터 감상자는 의도하지 않더라도 그 부산물과 함께 있게 된다. 허수아비처럼, 부산물은 간혹 상대방을 그것의 위치로 유인한 다음 특유의 부질없음으로 인해 다시 상대를 저 밖으로 밀어낸다. 이 과정의 반복이 만약 하나의 풍경이라면 그곳의 지층은 불안정하지 않을까. 한가운데의 대상은 가라앉는 중인지 부유하는 중인지 헷갈리고, 점차 지층과 대상은 서로 비슷한 색으로 이염되는 중일 것이다. 수조 내부의 재료들은 미세하게 색이 변하고 있다.
유리막에 각인된 글귀는 중세에 시작되어 현재에 와서도 다양한 멜로디로 노래되는 ‘Scarborough Fair(스카보로 시장)’의 원가사 일부를 변형한 것이다. 신원미상 화자의 “바늘땀도 세세한 바느질 자국도 없는 셔츠를 만들어 줘,”라는 제작이 불가능한 사물-옷감 1-에 대한 요구는, 직접적인 연관이 없으나 위 노래의 배경 지역의 랜드마크라는 이유로 서로 유사한 감정을 가지게 된 ‘Scarborough Castle(스카보로 성)’을 모방한 형상-옷감 2-와 겹친다.
5. <Beachwalk>, 2023, 단채널 영상, 2.3:1, 컬러, 사운드, 5분
이미 존재하는 많은 정보들 사이로 어떻게 빗겨나갈 수 있을까. 그러기 위해 이름을 지어 부르는 일과 사본을 만드는 일 사이의 관계를 파악하면서 완전히 다른 시간대의 상대방과 나의 태도를 비교한다. 그래서 편지 형식으로 위장한 동문서답은 타인의 일기장을 들여다보면서 하는 혼잣말이기도 하다. 이 일기는 1793년에 캐나다의 영부인이었던 Elizabeth Simcoe가 어느 호수의 하얀 절벽을 보고 고향의 경치를 상기시킨 순간에 대한 내용이다. 그 절벽을 고향의 이름대로 부르자는 경쾌한 문장은 어느 지명의 쓰임-축제, 인명, 팝송 등에서-이 닳고 닳을 정도로 다양해진 지금 오히려 낯설어 보인다.
같은 이름을 가진 장소들을 각각 원형에서 파생되어 나온 파편으로 바라보고, 한계를 가진 이미지들은 미세하게 반응하듯 움직이며 세 나라에 위치한 어느 동명의 해변들을 다시 구분 없이 맞붙인다.
전경
빈 잔, 2023, 단채널 영상, 2.3:1, 컬러/흑백, 사운드, 9분
빈 잔, 2023, 단채널 영상, 2.3:1, 컬러/흑백, 사운드, 9분
빈 잔, 2023, 단채널 영상, 2.3:1, 컬러/흑백, 사운드, 9분
빈 잔, 2023, 단채널 영상, 2.3:1, 컬러/흑백, 사운드, 9분
낡은 벽화, 2023, 아연판, 부식액, 포장지, 프레임, 27x39cm
비석들, 2023, 아크릴판, 잉크, 판화지, 프레임, 21x30cm
비석들, 2023, 아크릴판, 잉크, 판화지, 프레임, 21x30cm
허수아비, 2022, 유리 수조, 아크릴 덮개, 젤 왁스, 수세미, 30x45x45cm
Beachwalk, 2023, 단채널 영상, 2.3:1, 컬러, 사운드, 5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