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혜라

choehera@naver.com
@hyerachoihaein

 
나는 같은 기간에 머물러 계속 덧칠을 하면서 앞으로 더 나아가지 못하고 있었다. 내 기억들은 마치 바다의 파도 처럼 밀려왔다가는 다시 밀려가 버렸다. 파도들은 모두 서로 닮아 있었지만 그 어느 것도 똑같지는 않았다. 그래서 나로서는 같은 장면들을 여러 번 묘사하는 수밖에 없었다. 어떤 묘사가 최종적인 것인지 말하지도 못하고 말이다.
『눈 속의 에튀드』, 다와다 요코, 최윤영 역, 2020, 현대문학


되돌아오고 밀려나는 파도가 역사의 시간을 웃돌아 이곳에 귀환하며 그 흔적을 덧칠하고 있는 것, 그것을 하나의 춤이 몸을 경유한 이미지로 재생되고 있음과 겹쳐 바라본다. 누군가는 옅게 기억하거나 혹은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 존재의 움직임이 그들의 죽음 이후에 덧붙여지는 것이 아니라, 삶에 그 자체로 잔존을 배태한 채 이곳에 도착하였음을, 도착하고 있음을, 이해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할머니의 진화론, 싱글채널비디오, 흑백, 사운드, 13’, 2023
Teardrops, 나뭇가지를 알루미늄 캐스팅, 가변크기, 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