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으로서의 졸업 전시


졸업전시를 사건으로 바라본다면, 이 사건은 생의 사건일 것이다. 어떤 교육공간을 거쳐가는 사람들의 주기적 과정 속 한 국면이기에. 그리고 이 사건은 미술의 사건일 것이다. 충분히. 교육제도로서의 미술을 전공한 이들의 충실함과 성취를 세상에 내어놓고, 또 나중에 어떤 중요한 ‘작가’들이 이 전시를 거쳐 갔다고 발견되기에.

매해 어김없이 돌아오지만, 매번 다르기에 기억에 남을 사건일 가능성을 가지지만, 실제, 졸업전시는 굉장한 충격을 주는 사건의 지위보다는 기억 속에서 서서히 옅어지는 잔상으로 남는다. (이런 점에서 졸업전시는 각인되면서도 휘발되는—그리고 이 전시의 기획자인 학생들의 서문에서 주요하게 채택된 개념이기도 한—“바캉스”의 이중성과 닮았다.) 왜일까? 개개인에게는 유일한 것이지만, 집단의 사고 속에는 늘 반복되는 똑같은 (습관 같이 잘 수행될수록 의식하지 못하는) 사건이라서일까? 가능성의 상태라는 함정 때문일까? 그래서 아직 미결정 상태인 학생들의 전시를 ‘사건’으로서 보기엔 미진해서? 반대로, 사건이 너무 많아서일까? (전국에 무수한 미술대학을 떠올리면 너무 당연하다.) 진짜로 그 많은 졸업전시 가운데 미술의 사건이 되는 사례가 없는 탓은 너무 바쁘고 완결된 미술(계)에 있지 않을까? 아니면 해체를 거듭한 미술(계)의 혁신이 전공 학제라는 미술 교육의 영향력을 점차 무색하게 만들고 있기 때문일까?

물론 이 단어가 가진 정의와 파급력을 엄밀하게 따지면, 졸업전시는 ‘사건’이 아닐 테지만, 장소적 연원을 고려하면 그러한 ‘사건’과 무관하지 않다는 점이, 이 학교의 졸업전시가 늘 가지는 특징으로 읽힌다. 지울 수 없는 ‘사건’은 전시장으로 활용된 실기실(방)에서 일어났었다. 역사적으로. 또 해소될 수 없는 상처로. 예술대학 실기실로 활용된 지도 꽤 지난 지금까지 이 각각의 방에서 벌어지는 미술의 사건에 그 ‘사건’을 끌고 오기엔 무리가 있다. 자칫 새로움을 짓누르는 멍에로 변질될 수 있으니. 그 ‘사건’의 의미는 이 졸업전시에 대한 비교의 잣대가 아닌 상기의 지층으로만 떠올리는 것이 좋겠지만, ‘사건’의 장소임을 보여주는 구조적 증거이기도 한 이 학교 건물의 중정이 여전히 생각 속 “그늘”처럼 자리한다. 공교롭게도 딱 20년 전 이 예술대학의 중정에서 열렸다는 학생들의 전시에, 박이소 작가가 교수로서 쓴 발문 제목이 ‘재능을 꽃피우자’였다. 의도치 않았을 테지만, 나는 이 재능‘들’이 매해 피웠을 영향이 (그리고 해원·애도하는 ‘향’의 의미로서도)‘비존재’를 야기했던 그 ‘사건들’의 상처를 돌봐온 듯한 인상을 받는다.

2023년의 졸업전시를 만든 이들에게 (상처를 연상케 하는 의미에서 또한) 벌어진 ‘사건’은 팬데믹이었다. 올해 졸업전시에 참여한 대다수는 2019년 무렵 입학은 했으나 실기실(자신의 방)로부터 흩어져야(떠나야)했고 학우이자 미래의 작가 동료로서 이들 사이에 간격은 벌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이 전시는 “흩어졌던 것들이 간격을 좁히며 발생하는 ‘사이 그늘의 날들’”로 스스로를 명명한다. ‘사건’을 은유로 풀어낼 줄 아는 기획적 묘미가 돋보이는 지점이다. 그리고 이 재능은 제목이나 말재주만이 아니었다. 전시 홍보물에는 도보가 아니면 이동이 어려운 지점을 미리 알리는 문구와 배리어프리 지원을 사용하는 방법이 담겼고, 시각약자를 고려한 큰글씨 표기와 인식하기 분명한 명암 차이 표기, 그리고 점자가 함께 인쇄되었다. 장애인의 문화 접근성에 관한 강연을 마련하고, 또 음성 안내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기도 했다. 알다시피 그저 운영으로 마무리되기엔, 시각 장애를 고려한 음성 해설 작성과 교정, 윤문 작업, 녹음, 웹플랫폼 운영까지 할 일이 많은 사항이다. 이런 준비가, 이제는 ‘학내 졸업전시 배리어 프리 실무안’으로 다른 전시에서도 쓸 수 있게끔 여러 가지 경험적 변수와 물리적 조건에 대비한 지침으로 완성됐고 공유되고 있다는 점은 현재의 미술 제도기관에도 성찰을 던져준다. 또한, 퍼포먼스를 소개하는 문구에는 짤막한 한 줄이지만, 사람에 따라 위협감을 일으킬 수 있는 자극에 관해 미리 설명해 둠으로써 퍼포머의 신체뿐 아니라 관람자의 신체적 감응을 고려하고 있었다. (이 안내는 경고가 아니라 감각 기관이나 심리적 차이에 대한 배려로 읽혔다. 실제로 퍼포먼스 현장에서 눈부심, 자신의 비체를 타인에게 옮기는 듯한 행동, 자해/살해를 연상시키는 동작 등이 행해졌으나, 관객으로서 보기에 그렇게 위협적이지 않았다. 요즘 미술의 급진적 경우나 일상적 미디어에서 마주하는 폭력 이미지에 비하면 더더욱 그러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개별 작품의 성취만이 재능일까? 나는 이러한 윤리적 성취 또한 이 예술대학 학생들의 재능으로 높이 사고 싶다.



이러한 판단은 이 졸업전시에서 목격한 예술적 재능이 미약해서 대신 내미는 것이 아니다. 전시장으로 활용된 방들은 한 학생-작가마다 거의 방 하나씩을 할애했는데, 작은 개인전이나 석사학위 청구전과 비슷한 정도의 규모와 밀도를 보여주었다. (당연한 사실이지만, 미술·예술대학에서 졸업전시는 보통 학부 과정에만 해당한다는 점을 일러둔다.) 텍스트, 오브제, 스크린, 광원을 동반한 영상·설치·퍼포먼스 작업들이 다루는 주제(환경 변화, 생태계와 비인간적 존재들, 비체, 생명 복제 기술과 자본 시장, 자아, 개발과 거주·정주권 등)나 글쓰기(에세이의 미학), 푸티지 편집(이미지 아카이브의 발굴과 인용)은 학교 바깥의 미술과 한 뼘 차이로, 아니 비등하게 성큼 다가서 있었다(학교 안팎의 좁혀진 격차만큼이나, 크게 뒤엎는 새로움도 없었다). 최신의 미디어 작업 외에도, 전통적인 미술 실기의 재료·기법적 측면에서도 캔버스뿐 아니라 판화, 조각, 도예, 유리공예로, 또 의상까지 고르게 분포한 인상을 받았다. 그중 유리공예 같은 제작에 까다로운 물질을 다루는 작업이 예상치 못하게 많이 목격된 점은 학생들이 그 물성과 기법에 매료된 이유도 있겠지만(인기강의라고 들었다.), 이 학교의 실기 여건이 희귀한 분야까지 (국내에 유리공예 실습시설과 교수 인력을 갖춘 미술.예술대학은 정말 몇 안 되는 것으로 안다.) 아우를 정도로 고루 갖춰짐을 증명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주목할만한 것은 각 방 초입에 거의 빠짐없이 비치된 각각의 작업 서문의 존재감, 그리고 A4 용지를 채운 글과 도면에서 드러나는 작가로서 자신에 대한 도해였다. 조형적·시각적·문화적 언어로까지 전개해야 할 작가적 논리를 침몰시키곤 하는 개인의 감정이나 경험에의 함몰이 없었다고는 할 수 없지만, 예술대학 4년에 이 정도로 자기 탐구를 성취한다는 것만으로도, 또 그것이 희귀한 것이 아니라 학생 보편의 달성이라는 점에서도, 이 하나하나의 가능성들을 어설피 볼 수 없다.

물론 학교라는 제도가 계기가 되어주고, 선행한 결과가 있기에, 이러한 타율적 힘이 작동해서 졸업전시가 발현한다. 그러나 등록금을 냈다고, 수업을 모두 이수했다고, 그저 내 이야기가 전시로 펼쳐지는 않는다. 내가 작가로서 나를 도와야 나의 작업을 이 방에 들여놓을 권한과 “자유”도 생긴다. 함께 하는 전시에서 (전체 안에서 내 몫을 다해야 한다는 것과 대척점에 있는 의미로) 내 세계를 잘 펼쳐내는 일은 모두의 전시를 돕는 일이기도 하다. 그렇게 졸업전시는 내가 나를 돕는 행위를 서로 돕는 일로 바꿔낸다. 한편, 전시를 운영하기 위해서는 지킴이, 안내, 홍보처럼 내 작업이 아닌데도 정말 서로 도와서 할 일이 생긴다. 전시에 참여한 학생들은 이 일을 함께 의논하고 나눠서 해내야 한다. 이처럼 졸업전시는 상호부조의 자율적 생태계가 발현하는 사건이다.

졸업전시라는 사건 뒤에 각 방의 주인인 학생·작가들은 선택해야 할 것이다. (나도 이 글을 쓰기 위해 어떤 생각의 선택을 해야 했지만, 졸업전시라는 사건을 겪었던 나 자신이 투영돼 마침표를 유예한 상태로 한동안 머무르는 폐를 끼쳤음을 고백한다.) 마감을 한참 넘긴 이 글을 뇌리에 붙인 채로, 졸업전시의 작가들이 자신의 다음 방으로 꿈꿀 테지만, 또 미술계의 각축장으로 비판 받기도 하는 비엔날레를 보러 광주로 향했다. 그곳의 한 서점에서 나와 그리 멀지 않은 또래로 보이는, 귀향한 한 소설가를 만났다. 그가 오랜만에 낸 소설집의 표제작인 ‘올해의 선택’은 졸업이라는 사건이 예견하는 문제들과 무관하지 않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구인구직, 서울과 비서울, 정규직과 가난, 정착과 객사, 실패와 성공, 그 선택과 ‘선택당함’의 문제 사이에서의 선택이 이 졸업전시라는 사건 이후에 다가올 것이다. 상호부조의 경험이 각자의 졸업전시를, 좋은 선생님의 영향, 자아 중심만의 돌봄을 세뇌하는 신자유주의, 경쟁에서 뒤처진다는 공포에서 벗어나 작가로서, 인간으로서 나의 “파동과 이탈”을 일으켰던 사건으로 기억하게 하길 바란다.

“...선택지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다른 길이 있을 수도 있다는 게 좋았다. 그것만으로도 마음이 가벼웠다. ...눈앞에는 푸릇푸릇한 풀들이,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이 아른거렸고, 귓가에는 싸아악 하는 바람 소리가 들렸다. 생각해보지 않는 일이 마치 오래전부터 원했던 일처럼 펼쳐졌다.”(황지운, “올해의 선택”, 88.)

*마지막 문단의 소설 인용구 외에 쌍따옴표는 모두 이 졸업전시 기획글에서 따온 것이다.



김진주

미술작가, 큐레이터, 시각예술문화 연구자, 팟캐스트 진행자로 다양하게 활동한다. 《Home Works 7》(Ashkal Alwan, 2015), 《5회 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2016), 《고향》(서울시립미술관, 2019)등의 단체전에 참여했고, 개인전 《지진계들》(합정지구, 2020)을 열었다. 〈팟캐스트: 말하는 미술〉의 메인 진행자(2015-2016)였고, 콜렉티브 ‘아그라파 소사이어티(Ágrafa Society)’의 일원으로 웹진 세미나(2019-2021)를 공동 기획, 편집했다. 서울시립미술관 모두의 연구실 코랄(세마 코랄 SeMA Coral, 2021-)의 외부 기획자로 창간 편집을 맡았으며, 이어서 서울시립미술관에서 학예연구사(2021.10.-2023.9.)로 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