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은 재
⎯⎯ Eunjae Ahn
@ahnown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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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이 세계를 그려나가기 시작했다. 시간이 점점 지나고 그는 이미지의 표면을 사람, 동물, 천체, 도구, 집, 섬, 배, 협만, 산, 왕국, 전원으로 가득 채웠다. 죽음 직전 그는 그가 여태껏 그린 미궁과 같은 세계가 그 스스로의 초상화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달았다.[1]
매체를 다루는 방법이 작업에 따라 바뀌는데, 보통 바깥의 어떤 장소 혹은 공간, 상황에서 겪은 경험을 토대로 만들어진다. 나는 사라지고 부서져 재가 되는 모든 것들에 대해 경외심을 느끼고 그것을 둘러싼 세계를 관찰하는 행위로부터 작업을 시작한다.
〈식물 초상〉 시리즈는 지금으로부터 약 4년 전 학교 옆 아직 공사가 진행되기 이전이었던 공터에 몰래 들어갔던 경험으로부터 시작되었는데, 당시 나는 이런 곳에도 어디선가 날아와 스스로 싹을 틔워 무성하게나 자라고 있던 폐허의 풍경에 왠지 모르지만 강렬한 인상을 받았고 여기 분포하던 식물군을 조사, 채집해서 본뜨는 작업을 하였다. (한 번은 석고 표면에서 실제로 싹이 트기도 했다.) 일종의 조각적 아카이브로서 기능했는데, 이듬해 공사가 시작되고 난 후에는 출입이 불가하여 그 앞 작은 공원에 있던 식물군들을 조사하였고, 올해부터는 그 작은 공원마저도 공사로 갈아엎어지고 말았지만, 그 속에서 미처 뿌리 뽑히지 못한 잡초들을 보았고 그들을 - 아마도 마지막 작업으로 - 데려오게 되었다.
콘크리트와 아스팔트 돌덩이에 찍혀버린 나뭇가지와 이파리의 조각으로부터 과거의 풍경을 상상할 수 있을까? 이 잡초의 화석은 시간과 공간의 불가사의하고도 선명한 파편, 오래전에 사라진 세계, 우리가 존재했을지도 모를 장소에 대한 증인이라고 여길 수 있을 것이다. 단단해 보이는 조각들은 작은 충격에도 쉽게 깨지고 부서져 가루가 되어 다시 공기중으로 사라지지만, 공사로 인해 콘크리트 바닥 아래 묻힐 운명의 잡초들은 언젠가 또 그 두꺼운 층의 어딘가 틈새를 비집고 나와 싹을 틔울 것이다.
〈Landscape Portrait〉 그림들은 모두 태양이 사라지고 나타나는 혹은 수평선을 마주하는 시간을 그리고 있다. 참조하고 있는 원본 사진들은 대부분 본가에 돌아갈 때면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집 앞 공원에서 보았던 하늘의 풍경을 담고 있다.
나는 가족력으로 시력이 약해서 안경을 벗으면 세상 모든 풍경이 흐릿하게만 보이는데 이대로 계속 나빠져 결국 실명하게 될 운명이라면 세계를 어떻게 더듬을 수 있을까?캔버스를 감싸는 천의 표면을 만지면 내가 보았던 풍경을 떠올릴 수 있을까? 나는 집 앞 공원에서 해가 넘어가는 방향으로 걸어가다 보면 더 이상 갈 수 없는 곳까지 다다랐을 때 마주하는 강둑에서 해가 지는 걸 한참이나 바라보곤 한다. 눈을 감았을 때도 보이는 풍경의 모습에 대해 생각한다.
[1]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저자 그리고 다른 텍스트들』 (1965), 갈리마르 출판사, 1982.
Un homme fait le projet de dessiner le Monde. Les années passent: il peuple une surface d'images de provinces, de royaumes, de montagnes, de golfes, de navires, d'îles, de poissons, de maisons, d'instruments, d'astres, de chevaux, de gens. Peu avant sa mort, il s'aperçoit que ce patient labyrinthe de formes n'est rien d'autre que son portrait.[1]
I like to work with different mediums, and they are usually derived from personal experience of some places and spaces outside. With a sense of awe for all things that disappear, collapse and turn to ash, I start by carefully observing the world around me.
The Plant Portraits series began about four years ago when I sneaked into the redevelopment area next to our school, still untouched by construction at that time. Something about the way plants had quietly taken root and thrived in this desolate place, left a deep impression, leading me to collect and cast some of them I found there. (Once, a tiny sprout even emerged from the plaster surface.) This project became a kind of sculptural archive. The following year, construction blocked access, so I moved to a small park right next to the place. Even that park was recently overtaken, but I managed to gather a few remaining weeds for what might be the last pieces of this series.
Can we imagine past landscapes from the imprints of leaves and branches pressed into concrete and asphalt? These fossils of weeds, fragile yet somehow vivid fragments of time and place, stand as witnesses to a vanished world we might once have been. These pieces, though they seem solid, are so delicate—shattering easily to dust with the slightest touch. Even as they’re buried beneath the layers of concrete, I can imagine these weeds one day pushing through again, sprouting in whatever space they can find.
The Landscape Portrait paintings capture the times when the sun appears or disappears along the horizon. Most reference photos were taken at the river park near my family home, where I spent hours watching the sky.
With my poor eyesight, I can only see a blurry view of the world, but how would I see the world if I'm destined to go blind? If I touch the texture of the paintings, would I remember the landscape I've seen? We each have places we walk through, looking for meaning along the way. As for me, I often find myself walking toward the sunset by the riverbank. I think of scenes that remain vivid, even with my eyes closed.
[1] Jorge Luis Borges, L'auteur et autres textes (1965), coll. L'imaginaire, © Éditions Gallimard, 19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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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전경
installation view
안은재의 작업 설치 전경이다 하얀 벽이 있는 갤러리 내부 전경으로 벽에 위쪽 아래쪽으로 풍경화 두 점이 걸려 있고 창가에는 의자 두 개가 놓여 있다

연못, 2023, 캔버스에 혼합재료, 27.5 × 16.3 × (3) cm, 27.5 × 48.9 cm
sights beyond the pond, 2023, mixed media on canvas, 27.5 × 16.3 × (3) cm, 27.5 × 48.9 cm
안은재의 회화 작업이다 흰 벽에 세 개의 작은 캔버스가 나란히 놓여 하나의 장면처럼 보인다 그림은 흐릿한 하늘과 물에 비친 풍경이 조화를 이루고 있고 작품의 가운데 부분은 조금 더 밝고 투명한 느낌으로 마치 안개가 낀 것처럼 표현되어있다

전시전경
installation view
안은재의 작업 설치 전경이다 흰 벽에 설치된 세 개의 작은 어두운 풍경화 패널이 가로로 설치되어 있고 그 위쪽 오른편에는 두 개의 작은 정사각형 그림이 걸려있다

전시전경
installation view
안은재의 작업 설치 전경이다 흰 벽 중앙에 가로로 길쭉한 풍경화 세 점이 수직으로 나란히 걸려 있다 각각 다른 시간대의 하늘과 풍경을 담아 대비를 보여준다

전시전경
installation view
안은재의 작업 설치 전경이다 오른편 앞쪽으로 흰 벽에 회백색의 작은 평면처럼 보이는 조각이 부착되어있고 왼쪽 뒤로 세 개의 작은 어두운 풍경화 패널이 흐릿하게 보인다

식물 초상, 2020-2024, 콘크리트, 석고, 먼지, 흙, 씨앗, 가변 크기
Plant Portraits, 2020-2024, concrete and plaster relief, dust, soil, seeds, dimensions variable
안은재의 입체 작업이다 흰 벽에 회백색의 작은 조각이 붙어있다 조각은 식물의 꽃망울과 잎의 일부분을 본뜬 것처럼 보이며 부조 형상으로 입체적이지만 평면적인 회화에 가깝게 표현되어 있다

Why Hasn't Everything Already Disappeared?, 2023, 단채널 영상, 컬러, 사운드, 8분 49초
Why Hasn't Everything Already Disappeared?, 2023, single-channel video, colour, sound, 8 min 49 sec
안은재의 영상 작업이다 어두운 검은색 배경 위로 빛의 산란이 보이며 중앙에는 빛줄기가 퍼져 나가는 모습이 나타난다 주변에는 다각형 모양의 흐릿한 빛무리가 겹쳐져 있고 선명하지 않은 선과 점들이 불규칙하게 흩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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