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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 지 언


⎯⎯  Jieon Ryu


@softt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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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플라스틱 대학살은 GTA5에 등장하는 스트리퍼들을 그린 것이다. 이들은 현실의 누구도 지시하지 않는 익명의 모델링이지만, 게임의 배경도시인 산 안드레아스가 은유적 현실로 기능하는 것처럼 이들의 얼굴 또한 가상에만 머물러있지 않는다. 잉크젯 전사를 기반으로 유화로 덧그린 방식은 이미지가 현실에 잔류하는 감각에 대한 것이다. 잉크는 물에 약하고 전사 또한 형상을 온전히 유지하지 않는다. 유화물감은 이 이미지들의 형태를 방해하지 않고 강화하려고 노력한다.

이들의 이름은 게임 속에 등장하는 스포츠카의 이름을 따서 지어진다. 죽여도 다시 살아나는 이 여자들은 여전히 이 안에서 소유할 수 있는 것들 중 최고의 가치를 대변한다. 계속 재생되는 시뮬레이션 안에서, 욕망과 교환의 영원한 순환.

카르멘과 팜 파탈과 같은 오래된 유혹자 여성 각본은 파멸을 불러오지만 동시에 매혹적인 불멸의 에너지를 갖는다. 여성 이미지 제작자는 종종 오해를 포용하면서 그러한 미학을 활용하고, 적극적으로 의도할 수 있다. 자신과 타인에 대해 특히 신체적으로 냉담한 태도의 미학, 지루한 관능의 태도. 해내는 것은 종종 무심해지는 것을 뜻한다.



sleepwalk는 경주마에 대한 관심으로부터 출발한, 말이 되는 꿈, 기존 육체로부터 이탈하는 꿈에 대한 비디오다. 기존 언론 원칙에 대한 일종의 번아웃으로 촉발된 곤조 저널리즘은 켄터키 더비에 관한 기사로부터 시작된다. 그 기사는 사실은 켄터키 더비 주변을 둘러싼 분위기에 관한 것으로, 후에 이 저널리즘의 개념은 특수한 1인칭 시점을 갖는 포르노 장르의 문법으로도 확장된다. 그 독특한 예술 형식이 확립된 것의 중심에 경마장이 있었다. 모든 염증을 포함해 거대한 환상의 열기로 채워진 마법의 공간. 한편, 경주마의 삶은 처음부터 끝까지 혹독하게 프로덕션된다.



그 옆에는 Björk의 유명한 스토커 리카르도 로페스가 제작한 팻말을 재제작한 것이다. 그 팻말은 그의 가장 유명한 영상에 그가 죽는 순간에도 함께 포착되어있다. 리카르도 로페스는 미술대학에 떨어진 걸로도 알려져 있는데, 그가 만약 미술대학에 갔다면 아마 열정적인 학생이었을것이다.

유명인에 대한 스토킹은 대중문화 아이콘에 대한 열광, 기호에 대한 집착이 빚어낸 현상으로 이해된다. 한편 스토커들은 이후의 삶에서 심리의 기저가 궁금한 연구자들에 의해 혹은 팬이 된 사람들에 의해 추적되고 연구된다. 모두 미디어 환경 내에서 전파를 타고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멀리서 보면, 동일한 환경 속 에너지의 순환처럼 보이기도 한다. 작품이 제작된 캔버스는 내가 1학년 때 만들다가 망쳐놓은 것을 활용한 것이다. 그것은 우연히 로페스의 비디오의 오래되고 사후에 발견된 느낌처럼 산화되어 있었다.



비극을 음미할 때 특정한 장면들은 이런 식으로 돌아온다: 만약 그러지 않을 수 있었더라면 존재했을 미래. 어쩔 수 없었던 일이라고 생각하는 대신에, 더 나은 버전을 상상하고 슬퍼하는 것. 어쩌면 슬퍼하기위해. 삶은 차트처럼 멀리서 내다보거나 판단할 수 있게 보이기도 한다. 그리고 심지어 그렇게 할 수 있다. 손에 쥘 수 있으면 그것을 컨트롤할 수 있게 된다. 우리는 우리 삶을 성공으로 인도할 수 있는것과 마찬가지로, 비극의 지점을 설정하고 의도할 수 있다. 그리고 비극은 종종 미학적으로 아름답다. 비극을 향유할 수 있는 주체로서, 우리는 삶의 내러티브를 설득력 있게 조직할 수 있다.

그러나 거기에는 물론 우리가 그것에 책임을 지고 설득할 수 있다는 믿음을 기반으로 한다. 완벽한 배우, 경주마는 아무것도 묻지 않는다: 착취, 시스템, 정체성, 자유에 대해서. 작업에 사용되는 잔재들은 불가해한 집중상태에 대해 접속을 시도하기 위해 불러내진다.

병리성은 이것들이 의도하에 주조된 비극이 아니라, 가능성 없이 그렇게 끝난 이미지들이기 때문에 드러난다. 대척점에는 향상을 위한 BDSM의 모델이 있다. 마조히즘의 본질은 파괴와 재생으로, 역설적으로 회복에 관한 것이다. 추락을 겪고 다시 일어나는 것을 믿기 때문에 시도될 수 있다. 일시적 객체화를 겪는 것. 압도감에 대해 편안하다고 느낄 때까지 계속 시도하는 것. 자신을 가혹하게 하고 감독하는 것. 언제나 자기 자신으로 돌아오는 것. 자기인식을 고취시키는 것. 비극은 이미 끝난 것을 바라보는 것이며, 그 상태가 되어보고자 하는 것에 대한 열망은 물론 마조히즘에서 중요한 것이다. 희생의 의식을 이해하는 것. 그리고 그것의 추구가 일시적이지 않으면, 그것은 지속될 수 없다.

이것은 비극에 대한 탐닉뿐만이 아니라, 비극적인 장면에서조차 발휘된 노력에 대한 것이다. 무엇에 대한 노력? 가장 빈약해진 삶의 양태에서조차 생생히 살아있는 것: 환경과 관계하는 법, 사람들 사이에서 존재하는 방식, 독립적인 개체가 되고자 하는 독특한 욕망.



WIP(WORK IN PROGRESS)는 산업에서 완성품 이전의 부품들이라는 뜻으로도 쓰인다. 이것은 문화로부터 배양된 균사체같은 것들이다. 작업 전반은 콜라주 형식을 생각하면서 실험되었다. 이미지들은 인터넷에 이미 떠도는 상태로, 각각의 이미지들이 가진 에너지들을 다시 불러오기 위해 제시된다. 그것들은 약간 훼손되고 재발견된것처럼 낡고 덧입혀진 외양을 취한다.

원본은 게임, 괴담처럼 현실과 이미 조금 유리되어있는 형식으로 근본적으로 그것을 향유할 수 있게 하는 안전한 베일로 포장되어 있다. 무언가를 추동하는 힘 자체는 그것이 어떤 이탈에 빠져있더라도 성과에 적용되는 웰메이드의 논리를 발견할 수 있다. 수렴시키는 것. 기대감. 다음 삶으로의 이행. 향상. 결과적으로 자본주의의 대량의 쓰레기가 남긴 공허한 기호라도, 시장이 돌아가거나 이야기들이 구전되는 동안, 이미지들은 욕망을 끌어들이고 여전히 영향을 주는 것에 열려있었다. 말에게 내재된 본능처럼, 강렬한 ‘다음 순간’에 대한 추구가 거기에 있었다. 현재는 언제나 불충분한 것이며, 미래를 향한 기이한 방향성과 힘이 내장된 것이다. 그것이 살아있다는 느낌이고, 포착된 것들은 그 순간에 존재하기를 강력하게 바랐던 염원에 의해 주조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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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스틱 대학살, 2024, 판넬에 잉크 전송 및 유채, 40x40cm
Plastic massacre, 2024, ink transfer and oil on pannel, 40x40cm 

대체텍스트 없음









sleepwalkk, 2024, 단채널 비디오, 03분 48초
sleepwalkk, 2024, single channel video, 03min 48se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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