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윤서
Yoon Seo Kim @eosnuy
강제 이주와 경계에 머문 존재들에 주목한다. 제국주의 식민통치 아래 조선인들이 이주한 만주국은 단순한 지배와 피지배 관계를 넘어선, 복잡한 민족 간 갈등과 충돌이 얽힌 공간이었다. 이 전시에서는 조선인이 배후의 힘에 의해 의지와 무관하게 이동하고 정착했던 흔적과 그 과정을 탐구한다.
“ 사과 재배법은 일본에서 훔친거야 . ”
어느 오후, 친구와 사과농장을 방문했을 때였다. 친구의 아버지가 사과를 따며 문득 이렇게 말했다. 그 말은 단순한 농업 기술의 전수를 넘어 사과에 담긴 노동과 땅, 그리고 그것을 둘러싼 식민지 역사를 암시했다. 개항 이후 인간의 의지에 따라 발생한 이식과 이동은 단지 생물학적 과정이 아닌 사건의 징후였다. 이 말을 듣고 얼마쯤 시간이 지난 뒤에 찾은 엽서 한 장, 사진 속에는 사과를 따는 조선인 여인이 있다. 나무들은 가지가 잘 정리된 채 줄지어 서 있었고, 사진 속 여인의 옷은 유난히 희었다.
〈 내일 건네줄 사과〉(2024)는 앞서 말한 사과를 훔쳐온 이야기에서 출발해, 이식된 사과와 그 속에 남겨진 흔적을 따라가는 비디오다. 다롄은 처음 러시아 제국의 군사적 요충지로 계획되었으나, 일본 점령 이후 급격히 이주와 정착의 중심지가 되었다. 일본은 이곳을 ʻ새로운 낙원’으로 선전하며 농업 공동체를 건설했지만, 이 이상은 복잡한 갈등과 충돌이 얽힌 현실 속에 머물렀다. 다롄이라는 이름이 '먼곳'을 뜻하는 러시아어에서 유래했듯, 이 도시는 많은 이들에게 도달할 수 없는 먼곳, 혹은 새로운 출발점이었다. 작업은 도쿄와 서울의 공원, 그리고 만주의 다롄을 배경으로 한다. 동시에 영상의 두 화자는 각기 다른 언어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한국어 화자는 사과를 삼킨 개인의 경험을 들려주고, 일본어 화자는 만주에서 쓰인 시와 엽서를 읽는다. 당시 일본어로 기록된 텍스트는 번역 과정에서 생기는 오류와 왜곡을 반영하며, 이는 죽은 자의 말을 산 자가 다시 쓰는 애도의 시가 된다. 본능적으로 빛을 쫓다가 포획된 나비, 갑작스러운 추위에 무른 상태로 가지에 매달린 사과, 어둠 속에서 한 방향을 반복해 맴도는 새처럼, 영상에 나오는 대상들은 잘못된 지표를 따라 오류를 반복하며 정지와 변형 사이에 위치한다. 이 과정에서 기억 속의 이상화된 낙원의 이미지는 점차 물러나고, 일본 농업 이민자들이 점유한 농경지와 실험장이 전경화된다.
〈어쩌다 왕팡뎬 시에 오게 되신 건가요〉(2024)는 청사진을 들고 실시간으로 생성되는 기록을 따라 걷는 퍼포먼스 영상이다. 청사진을 들고 거리를 걷는 동안 번역기로 캡처된 이미지들이 자막처럼 사용되어 타임라인을 구성한다. 도쿄-후쿠오카-울산-서울-평양-다롄 여객 항공 노선을 이용한 누군가의 엽서를 발견한 후, 여의도 비행장 기념 스탬프가 세 번 찍힌 이 엽서를 통해 다롄은 '갈 수 없는 먼곳'에서 접근 가능한 공간이 된다. 사과의 청사진을 엽서 크기로 잘라 이미지가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다롄을 걷는 작업은, 정지된 역사 속 다롄의 시간을 사진의 물리적 시간성 안에서 다시 작동하게 한다.
〈오버런을 위한 편지〉(2024)는 타국에 사는 친구가 보낸 편지에 답신을 보내는 영상이다. 배경은 베를린의 템펠호프Tempelhof 와 서울의 여의도 공원으로, 이 두 장소는 과거 수용소와 항공로 중추 기지였으며 현재는 일상에서 벗어나는 통과 지점이 된다. 만주족을 통해 전해져 여의도에서 널리 재배되었던 '낙화생'은 땅콩의 한자어다. 꽃이 떨어져 땅속에 들어가 구멍 안에 열매를 맺는다는 뜻을 가진다. 이 의미를 빌어 영상에서는 중력을 거스르며 하늘에서 제자리 비행을 하는 비행 물체를 확장된 활주로로 이행시킨다. 영상에는 1945 년, 미군이 경성을 폭격하기 위해 촬영한 항공 사진이 등장한다. 이 사진은 여의도공항을 포함한 폭격 목표 지점을 동그라미로 표시한 지침서로, 여기엔 일본 제국이 동아시아 항공 네트워크의 중심으로 활용한 여의도공항이 포함되었다. 영상에서 화자는 이 동그라미를 따라 목표 지점을 세어나간다. 동그라미는 단순히 파괴를 위한 표식이 아니라, 누락된 정보, 소멸이 미완결된 미래를 드러낸다.
흰색 조각 〈이빨〉(2024)은 베어 무는 주체가 계속해서 전복되는 듯하다. 중국 고대에 사람들은 바위를 깎으면 안에 들어있는 영혼이 점차 독립된다고 믿었다. 이 미신에서 시작한 조각은 작은 도구로 세공하는 방식을 차용하여 제작되었다.
내일 건네줄 사과, 2024, 비디오, 단채널 비디오, 컬러, 사운드, 20분,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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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윤서의 내일 건네줄 사과 영상 작업 스틸컷이다 화면은 땅을 수직 아래로 찍은 구도로 잔디밭 위에 흰색 파이프 두 개와 아이보리색 파이프 열 개가 얽혀 있다 일부 파이프에는 구멍이 있으며, 주변에는 작은 사과들이 흩어져 있다 전체적인 톤은 어둡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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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윤서의 내일 건네줄 사과 영상 작업 스틸컷이다 초록색 기모노를 입은 여성이 검정색 아날로그 카메라를 두 손으로 쥐고 있는 회화의 확대샷이다 여성의 얼굴은 프레임에서 잘려 있으며 기모노에는 무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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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윤서의 내일 건네줄 사과 영상 작업 스틸컷이다 밑에서 위로 촬영된 붉은색 빌딩과 화면 중앙을 가로지르는 신호등이 있다 회색 하늘에는 구름이 많으며 우측 위로 새들이 무리를 지어 이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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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윤서의 내일 건네줄 사과 영상 작업 스틸컷이다 화면 중앙 오른쪽에 큰 구멍이 있으며 구멍 안에는 청색 산과 새를 그린 동양화가 있다 구멍의 주변은 하얀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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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윤서의 내일 건네줄 사과 영상 작업 설치 전경이다 왼쪽에는 16:9 직사각형 프레임이 등장한다 화면 안에는 흰색 꽃무늬 옷을 입은 여성의 얼굴이 잘린 상반신이 턱을 괴는 포즈를 취하고 있다 스크린의 우측 하단 주변에는 흰색 스티로폼 이빨 조각이 두 개 서있다 스크린과 조각이 놓여있는 공간은 어둡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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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윤서의 내일 건네줄 사과 영상 작업 설치 전경이다 화면의 4분의 1을 나눈 가운데에 사과가 잘려 바닥에 기울어있는 나무가 놓여져있다 나무가 자리한 풍경 앞에는 스티로폼 조각이 화면의 좌우로 놓여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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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윤서의 어쩌다 왕팡뎬 시에 오게되신 건가요 영상 작업 스틸컷이다 사과밭을 배경으로 중앙에 번역기 캡처 화면이 있다 번역기 화면에는 당신은 저의 은인입니다라는 한국어 문장이 있으며 중국어 간체로 번역된 텍스트가 표시되어 있다
어쩌다 왕팡뎬 시에 오게되신건가요, 2024, 비디오, 단채널 비디오, 컬러, 사운드, 11분 11초, 스틸 컷
What brings you to Wangfangdian, 2024, single-channel video, color, sound, 11min 11sec
* 김윤서의 오버런을 위한 편지 영상 작업 스틸컷이다 실내 장면으로 화면 중앙 상단에는 햇빛이 들어오는 창문이 있다. 방 안은 역광으로 어두운 밝기를 띄며 우측에 있는 식탁 위에는 꽃병 그릇 비타민 잼이 있다 좌측에는 냉장고와 식물들이 보인다
오버런을 위한 편지, 2023~2024, 단채널 비디오, 컬러, 사운드, 00:12:19, 스틸 컷
Letter for Overrun, 2023~2024, single-channel video, color, sound, 12min 19sec
* 김윤서의 오버런을 위한 편지 영상 작업 스틸컷이다 흑백으로 항공촬영된 지도 사진 위에 동그라미와 숫자24 25 26 27 28 29 32 8가 흩어져 있다 화면 하단 중앙에는 영어 자막으로 twenty-six twenty-seven이라고 적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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